병원에만 있는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니깐 그런가 보다 한다. 현재 우리나라 경기가 심하게 안 좋다고 한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이 개인의 삶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는 건 확실하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에 끼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는다. 남편은 2년 전 트럭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PNG 물류센터에 취직했다. 처음 입사할 당시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만 잠시 한다며 들어갔다.
불경기로 콜이 줄어 고정적인 월급이 있는 게 편할 것 같다며 임시로 들어갔지만, 지금은 거기서도 구조조정이 생길까 봐 걱정한다. 남편 말로는 거래처 대형마트가 하루에도 1~2개씩 매일 폐업한단다. 세상이 삭막하다며 콜은 거의 없단다.
콜이 줄어드니, 하나만 떠도 너도나도 서로 경쟁이 붙어 가격은 다운되고 일은 점점 힘들어져, 돈이 되지 않는다며 걱정했다. 나에게 번 돈을 주지는 않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남편이 미련스러우면서도 안쓰럽고 고마웠다.
말일에 남편은 딸에게 100만 원, 아들에게 30만 원과 용돈으로 5만 원씩 해서 140만 원을 준다. 나에게는 매월 1일에 자신의 보험료 70만 원과 딸 교정비 7만 원을 입금해 준다. 이번 달은 2일이 지나도 아이들도 나에게도 주지 않았다.
나는 가족 톡에 보험료를 입금하라고 올렸다. 남편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4일에 나에겐 입금을 해주었지만, 아이들 용돈은 주지 못했다. 나는 웃으면서 “이러다 한 달 건너뛰겠네?”라며 톡에 올렸다. 한 달 주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아들 돈은 내가 받고 금한 돈을 주었고, 딸은 용돈과 등록금을 냈다. 아들딸은 ‘아빠가 주지 않으면 엄마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생각이 강했다. 걱정하며 살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 남편은 열심히 일해서 7일에 주었다. 그것도 늦게 들어와 자기 바쁜 남편은 아이들을 만날 시간이 없어, 톡으로 “책꽂이에 용돈 두었어!”라며 보내왔다. 나는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용돈 계산을 했다.
딸은 아들 과외비와 용돈을 더해 60만 원을 주고 있다. 그리고 아들과 딸에게 아들이 한 달간 공부한 양만큼 용돈을 똑같이 한 번 더 준다. 티처스를 보고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수능 8과목을 하루에 조금씩 하는 걸로 해서 과목별 500원씩이다.
방학 때는 10만 원 이상이 나오지만, 학기 중엔 6~7만 원 선이 나온다. 이번 달은 6만 원이 나왔다. 이번 달에 딸은 71만 원과 항상 집안일을 잘해준 보답으로 금한 돈을 받았다. 아들은 금한 돈과 6만 원을 받았다. 둘 다 만족해했다. 나는 웃으면서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라고 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말에 아이들은 당황해했다. 당연히 받았던 돈에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라는 엄마의 말에 딸은 알았다고 했지만,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항상 받는 것에 익숙하고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주는 돈에 감사함을 모르는 듯했다. 마음이 씁쓸했다. 부모가 돈을 버는 이유는 자식을 위해서라지만, 자식에게 주는 게 당연한 건 아닌데 받는 자식들은 고마움이 없었다.
“아들딸. 아빠가 지금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버는지 알까? 모르겠네? 말이 그렇지 물건 나르는 일은 중노동이야. 그렇게 힘든 게 번 돈을 아빠는 거의 너희를 위해 쓰잖아.
솔직히 아빠나 엄마는 너희에게 돈을 주어야 할 의무는 없어. 너희가 자식이고 귀하고 이쁘니깐 주는 거지. 그러면 너희들도 당연히 감사함을 알아야지. 아빠 잠도 안 자고 하루도 쉬지 않고 버는 돈이야. 아빠도 지금처럼 힘들게 일하면서 산 적이 없었어.
아빠가 쓸데없이 이것저것 사서 짜증은 나지만, 그것도 다 너희를 위해 사는 거잖아. 아빠가 집에서 얼마나 먹니? 좋은 거 너희들 먹이고 싶은 게 과해서 그렇지. 엄마가 맘에 안 들어 하는 거와 너희가 감사해야 하는 건 다른 거야. 꼭 감사 메시지 보내. 내 이쁘니 멋쟁이!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빠가 들어오면 나가서 아빠를 기쁘게 맞이해 주면 어떨까? 너무 늦어서 너희가 먼저 잘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반갑게 인사도 하고, 대화도 해주었으면 좋겠어.
엄마 친구가 강아지 2마리 키우는 거 알지? 그 친구가 집에 들어가면 강아지들도 주인이 왔다고 나와서 반기더라. 하물며 아빠고, 너희를 위해 하루 종일 일하고 왔는데 쳐다도 안 보면 얼마나 허무하고 서운할까?”
딸은 이모 콘티와 “아빠 짱 ㅎㅎㅎ”라고 보냈다. 남편은 신이 난다는 듯이 음표로 답했다.
“이것 봐! 아빠 좋아하지? 아빠도 힘이 나야 일을 하지. 너희의 말 한마디와 반응 하나가 아빠에겐 큰 힘이야. 세상엔 당연한 건 없어.”라고 말하자, 조금 지나 아들은
“짱”이라는 한 단어만 보냈다. 나는 웃었다. 누나 거 보고 간단히 보낸 아들은 아들다웠다. 아니 남편다웠다. 어쩌면 저리도 똑같은지? 감탄스럽다. 남편의 답답함을 아들에게서 볼 때마다 답답하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피를 못 속인다는 말이 이 말인가?’
자정쯤 되자, 딸이
“아빠 왔다!”
“어떻게 알아?”
“아빠 차 소리 났어!”
남편은 10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주차하고 졸음을 참지 못하는 남편은 차에서 자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아빠에게 가보라고 했다.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나의 잔소리는 다시 시작되었다.
“아빠가 들어오지 않으면 내려가서 아빠를 모시고 와야지. 힘들어서 차에서 자는 거 같은데 차에서 자면 얼마나 불편하니? 내려가 봐?”라고 말해도 딸은 화장실로, 아들은 자신의 폰만 보고 있었다.
화가 났다. 자식 교육을 잘못 시킨 것 같았다. 서로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나의 부족함이 보였다. ‘내가 남편의 불만을 표현해서 아이들도 그러는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멋진 아들! 폰 그만 보고 아빠 얼른 모시고 와야지!”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잠바를 입고 나갔다. 얼굴엔 불만이 있었지만, 표현하진 않았다. 조금 지나자, 아들이 먼저 들어왔다.
“아빠는? 왜 너만 와?”
내 말에 현관문 쪽을 돌아보며 대답을 대신했다. 남편은 정신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화장실에 있는 딸에게 아빠 먼저 씻게 나오라고 했다. 남편은 그냥 자겠다며 거절했다.
“이쁘나! 아빠 오기 전에 씻어. 그리고 아빠 오면 양보해 줘. 아빠 얼렁 씻고 주무셔야지. 항상 피곤해하시잖아.”라고 말하는 나는 아이들이 야속했다. 같은 가족인데도 배려라는 게 없었다.
항상 자식 먼저 챙겨주는 아빠의 배려만을 당연히 받고만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사소한 애티켓도 말해야 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눈치로 알아야 하는 기본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안다는 게 뭔가 잘못된 느낌이었다.
가족은 단순한 혈연의 관계를 넘어, 서로의 존재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공동체이다.감사는 그저 속으로나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작은 행동 속에서 꽃피워진다. 가족 각자가 서로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그 마음을 표현할 때, 그들 사이의 유대는 더욱 깊어지고, 함께 겪는 어려움도 수월하게 넘길 수 있다.
가족 안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감사의 마음은 사회로 나아가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교훈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가정에서 느낀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며, 타인에 대한 존중과 감사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