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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May 11. 2024

사랑과 결속 : 가족을 위해 달리는 남편의 일상


남편이 트럭 일을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몸이 약한 남편은 몇 달 못 버티고 포기할 거로 생각했지만예상과 달리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때로는 남편이 애처롭고 안 돼 보여 내 마음을 힘들게 한 적도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에게 어쩌면 이 힘든 일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래 조용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남편은 주기적으로 여행을 다녀야만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우리 가족을 이끌고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것을 즐겼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남편과 다른 여행 스타일에 우리는 언젠가부터 함께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즐겼고, 남편은 홀로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은 집에 있는 게 좋다며 웬만해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각자의 세계가 서로 다르게 펼쳐지면서, 나와 아들딸과 다른 남편은 살면서 ‘많이 외롭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더 외로웠는지 모르겠다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갈구하던 나는 모든 사랑을 남편에게 의지했던 것 같았다.     


기대에 못 미치는 남편이 싫었다내 모든 걸 다 주고 싶었던 남편이었다. 나만의 꿈이었다. 그런 남편이 트럭 일을 하면서 짧게는 서울 경기·인천을 매일 돌아다닌다. 때때로 지방도 다니면서 전국 곳곳을 다닌다.     




남편은 아무래도 나와 같은 도화살이 있나 보다일은 힘들어도 돌아다니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가슴에 담아두는 게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 남편은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이곳저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꽃과 자연을 사진에 담아 가족 톡에 공유하며 우리와 소통한다.      


남편은 새로운 곳에 가면 사진 찍어 가족 톡에 올리며 이곳이 어디게맞추는 사람에게 만원!”이라는 유머를 보이며 우리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그러한 소통을 통해 나와 아이들은 남편이 어떻게든 즐기며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오늘은 어제오늘 일한 매출을 보여주며운이 좋았다고 자랑까지 했다. 매출이 770,000원이 찍혀있었다.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저녁을 사겠다고 제안했다. 좋아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항상 운이 좋았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아이들만 사주지 말고 병원에 있는 나도 과일 사 먹게 달라고 했다. 그러자 “부자 부자 부자”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에겐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는 그래도 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딸에게 10만 원 보내주면서 나누어 가지라고 했다.     


점점 감이 떨어지고 눈치가 없어지는 나는 아이들과 반반씩 가지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딸이 “엄마 5만 원, 우리 5만 원씩 가지라는 거야.”라며 설명해 주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좋았다. 남편이 번 돈을 처음으로 나만을 위해 주었다. 남편의 이러한 배려는 나에게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딸이 보내준 5만 원을 카카오 페이로 받으면서 ‘뭘 사 먹어야 기억에 오래 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적인 나는 돈에 있어서는 남을 위해서만 산 것 같았다. 나를 진심으로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살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나에게는 과감하게 쓰지 못했다.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고 자식이나 남편에게는 아낌없이 썼지만나에게 쓸 때는 항상 망설였다.     


암 수술을 세 번이나 겪고 난 후, 친구와 잘 본다는 점집에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나는 왜 아픈데도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무속인이 하는 말이,     


너는 대통령 아들과 결혼했어도 네가 벌어서 먹고사는 팔자야누가 널 먹여 살려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에 나는 모든 기대를 버리고 살았다. ‘나는 내가 벌어서 남을 먹여 살려야 하는 팔자구나!’

     



남편도 돈을 벌어도 나에겐 주지 않았다. “자신보다 부자라며.”


나는 남편에게 “앞으로도 오늘처럼 운이 좋아서 우리에게 자주 쏴 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변화하는 남편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힘들까 봐, 위험해서, 내 체면이 떨어지는 게 싫어서.’ 등 여러 이유로 트럭 일을 반대했지만, 지금은 남편이 편하게 그 일을 오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라는 연결고리 안에서 우리 각자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벌어들인 돈으로 인해 나는 경제적 부담을 덜게 되었다. 남편 또한 자신이 가족을 부양하는 데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조금씩 남편의 노력과 변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과의 이해가 깊어지는 이 순간들이 나에게도 큰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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