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일을 시작한 남편은 매일 늦게 들어와 아침 일찍 나간다. 우리 가족에게 남편의 얼굴은 언제나 깜짝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날은 다른 날보다 일찍 귀가한 남편 덕에 나와 아들딸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남편은 들어올 때 항상 뭔가를 들고 들어온다. 차 안에서 먹고 버린 쓰레기 가방일 수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음식이나 과일을 사 올 때도 있다. 그날은 소주와 망고가 들어있었다. 망고는 딸이 좋아해서 남편이 꾸준히 사 온다. 하지만 소주는 우리 중 누구도 먹을 사람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나 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남편도 조금만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힘들어한다. 이것도 유전이라고 아들딸 둘 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를 둔 나는 술을 남들 못지않게 잘 마신다.
나는 주로 맥주를 마신다. 맥주가 찬 성분이 강해 암 환자인 나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와인을 마셨다. 별로였다.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와인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양주도 몇 번 마셔봤다. 괜찮았지만, 혼자 마시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비싼 술을 사 놓기가 그랬다.
“소주를 왜 사 왔어?”라고 내가 물었다.
“음식 할 때 넣으려고.”라는 남편의 대답에 우리의 의문은 곧 걱정으로 변했다.
“당신이 음식을 한다고? 무슨 음식을 하는데 소주까지? 아직 덜 힘들어? 음식 하지 말라니깐, 딸이 해주는 음식 먹으라니깐. 당신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당신 먹을 거만해. 우리 아무도 당신 음식 안 먹어. 시간이 남으면 잠을 자라니깐. 아직 덜 바쁜가 봐?”라며 나는 기분 상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딸은 눈빛은 어떻게든 아빠가 음식을 하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애원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에게 암이라는 병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 어린 아들딸은 나의 부재에 불안함을 보였다. 특히 아들이 심했다. 남편이 키즈카페를 그만두었을 때, 나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했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남편도 마다하지 않았다.
6년 동안 남편은 아이들에게 많은 요리를 해주었다. 그의 요리는 건강을 최우선으로 했지만, 가족의 입맛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건강식이라고는 하지만 남편의 이상한 요리법은 우리에게 부담이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맛이 없으면 꽝이다.
아들딸이 어렸을 땐 선택의 여지가 없이 불만 없이 먹었다. 딸은 커가면서 스스로 음식을 해 먹길 원했다. 다행히 아빠가 일을 나가면서 딸은 먹고 싶은 음식을 아들과 만들어 먹었다. 밀키트 음식을 이용해서 만들었지만,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내가 퇴원해서 잠시 집에 있을 때도 딸은 자신이 메뉴를 선택해서 나와 아들에게 만들어 주었다. 건강을 생각하는 남편이 우리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해 주려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우리는 부담스러웠다.
같은 밀키트 음식으로 요리해도 남편은 과한 채소들을 투입하면서 음식 본연의 맛을 전혀 내지 못했다. 이러한 과도한 사랑의 음식은 우리 가족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엄마! 정말 나 먹기 싫어. 내가 이러면 불효녀 같은데.”라며 딸은 눈치 보며 나에게 하소연하곤 했다.
“알겠어. 엄마가 말해줄게. 먹지 마! 대신 알아서 아들하고 잘 챙겨 먹어야 해!”라고 말하며 나쁜 와이프가 되어야 했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아이들 걱정하지 말고 당신만 잘 챙겨 먹으라며 돌려서 말했다. 남편은 그 의도를 모르고 나만 없으면 일찍 들어와 식사 준비를 해주었다. 결국, 나의 말은 점점 강도가 높아졌다.
“당신 먹을 것만 해요. 아이들은 알아서 먹을 거야. 일하는 도중에 급하게 들어오지 마! 힘든데. 내가 병원 오기 전에 준비해 놨어. 필요한 건 딸이 알아서 할 거야.”라고 말해도 남편은 나만 없으면 들어와서 음식을 만들어 주려고 했다.
아침에도 아이들 학교 가기 전에 일찍 일어나 음식을 해 놓지만, 아무도 먹지 않는다. 나는 집에 있어도 아침엔 일어나지 않는다. 같이 준비하면 남편은 나에 대한 불만을 말하지 못하고 화를 품고 나간다.
나는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한다. 먹지 않겠다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많은 양을 해 놓고 먹으라고 한다. 아이들은 말없이 먹는 척하다 나간다. 모두가 나가고 나면 전기레인지 위엔 불어버린 만둣국부터 식탁에는 먹지 않은 빵까지.
그 음식들은 아무도 먹지 않는다. 다음날 남편은 말없이 버린다. 나는 좋게 또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된다.
“제발 당신 먹을 거만해. 아들도 학교 가면 11시에 점심 먹어. 아침에 많이 먹고 싶어 하지 않아. 딸도 자기가 알아서 먹는데. 힘들게 번 돈으로 사서 다 버리면 아깝잖아. 아침에 바쁜데 왜 아이들까지 신경 써. 그냥 당신만 먹고 일 가세요.”라고.
남편이 무심코 장을 보는 것을 줄일 수 있도록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채소와 과일을 사진 찍어서 가족 톡에 올린다. “제발 다 먹으면 사라고.” 그의 마음은 알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신선함을 잃은 채 썩어가는 채소가 아니다.
밀키트 배달 음식도 과하게 보낼 때가 많다. 그만 보내라고. 필요하면 딸이 알아서 살 거라고 해도 남편에겐 들리지 않는다. 20년을 살아보니 남편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걸 알았다. 혼자의 생각에 빠져 사는 듯하다.
나는 직접적으로 점점 세게 말할 수밖에 없다. 딸도 아빠가 음식 하면 말없이 그냥 나온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하는 아빠 음식을 아들도 한 끼는 어쩔 수 없이 먹지만 남은 음식 또 먹으라고 하면 대답하지 않는다.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 힘들게 만들어서 아무도 먹지 않고 버리면 화나지 않을까? 나라면 다신 안 할 거 같은데. 사랑이 너무 넘치는 건가? 우리 가족은 진정 부담스럽다.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자신들이 선택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딸은 이미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선택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립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되는 사랑이 서로를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진심을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결국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2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