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병원 침대에 홀로 누워 ‘점심은 뭐가 나올까?’라는 사소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많은 병원을 전전하며 식사 문제는 언제나 마음 한편을 차지했다.
가정에서의 따뜻한 식탁 대신 차가운 병실에서 식사가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병원에서 먹는 밥그릇 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즐거움이자 생명과 연결된 식사는 항상 신경 쓰였다.
이번 병원은 내가 처음으로 발을 들인 낯선 곳이라 인터넷으로 메뉴를 검색해 보았다. 뭔가 부족함을 느낀 나는 김치, 김 등의 밑반찬과 남편이 사준 과일 몇 가지를 가지고 왔다.
입원 전날, 남편은 웬일인지 가족 톡에 “딸기 한 다라 사갈까? 대형마트 나가는 길이라.”라는 글을 남겼다. 평소와 달리 우리의 의견을 묻는 그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에게 물어보고 사 오는 남편이 아닌데 조금씩 변화하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 내일 병원 가니깐 괜찮으면 두 다라 사와.”라고 남기자, “응. 다른 과일은? 사과랑 사 갈게.”라는 답이 왔다. 역시 남편이 제일 중요시하는 사과는 빠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아 잘 먹지 못하는 “한라봉과 레드향도 좀 사 오면 좋고.”라고 보냈다. 기대해서 보낸 건 아니었다.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딸기 한 다라만 병원에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남편은 딸기와 사과를 들고 와서는 한라봉과 레드향은 쿠팡에서 낼 아침 일찍 도착하면 가지고 가라고 했다. 당황스러운 나는 “쿠팡은 내가 병원 가서 시켜도 되는데.”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나도 이럴 때 보면 주책이다. “고마워!”라는 한마디면 되는데.
남편이 출근한 자리엔 한라봉 레드향이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나를 위해 사다 놓은 과일들엔 남편의 마음이 들어 있었다. 온몸에 파스를 붙여가며 힘들게 번 돈으로 아이들과 나를 위해 쓰는 남편이 고맙고 감사했다.
나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 그는 언제나 묵묵히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과 맞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특히 음식을 사거나 만들 때 더욱 두드러진다.
평생 힘든 일을 안 해본 사람이 벌써 2년 넘게 트럭 일을 하고 있다. 마른 체격의 남편은 힘든 일을 하면서 이제는 나보다 더 말랐다. 그런 남편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착실하고 괜찮은 사람인데. 꼬인 데도 없는데. 왜 우리와 조화되지 못하는 걸까?
내가 20년간 살아온 남편은 자기 생각에 갇혀 있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한다. 최근까지도 딸과 내가 힘들어하는 건 음식을 사고 만드는 문제였다. 딸은 얼마 전까지 나에게 유통기간이 지나지 않은 조미료나 음식을 원한다고 했다.
나도 어렸을 때, 가난해서 못 먹고 산 트라우마 때문에 쌓아놓은 버릇이 있다. 무조건 떨어지기 전에 사야 안심이 된다. 남편은 이런 것과는 달랐다. 뭐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좋다고 생각하는 음식은 계속 사다 날랐다.
냉장고 야채칸에 야채들이 안쪽에선 섞어 진물이 나도 보이는 쪽엔 새로 산 야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앞에 보이는 많은 야채가 있음에도 좋다고 생각하는 야채는 또 사 온다. 냉장고를 정리하다 보면, 당근과 양파는 봉지 봉지에 있다. 섞어 들어가는 당근부터 씽씽한 당근까지.
남편은 당근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사는 게 아니다. 당근이 몸에 좋으므로 장보면 무조건 사는 거다. 이런 게 당근뿐이겠는가? 과일과 고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병원에 있고 남편이 살림을 맡아 할 때 생활비가 나의 3배 이상 들었다.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혹시나 피해가 갈까봐 어쩔 수 없이 아무 소리 못 하고 제발 먹고 사라고만 하면서 그 비용을 다 주었다.
이런 성격이 가족 관계에서도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다. 말 없고, 점잖고, 꼬인 데 없는 남편은 어디 가서든 말없이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뒷정리도 도맡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욕했다.
와이픈 남편이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남편은 어디를 가나 최고의 남편이고, 순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가만히 있는 나는 내가 독하고 사나워서 남편만 시키는 나쁜 와이프였다.
대학 친구 모임에 간 적이 있었다. 다른 가정은 모두 여자가 아이들을 챙기고 있었다. 남자 동창들은 먹고 이야기할 동안 와이프들은 먹을 걸 준비하고 자녀들과 놀아주며 챙겼다.
나는 남자 동창들과 수다 떨며 놀고 있었고 남편은 아이들과 나무 타기하며 놀아주고 있었다. 이처럼 어딜 가나 나는 남편에게 모든 걸 맡기고 제멋대로인 독하고 나쁜 년이었다. 나는 익숙해져서 웃기만 하다 가끔 부러워하는 친구나 지인에게 “그럼 내가 빌려줄게 한 번 살아봐!”라고 말했다.
‘이렇게 착하고 순한 남편과 나는 왜 힘든 걸까? 나는 왜 외로울까?’ 고민하던 중 대학 친구가 말했다.
“우리 인경이 많이 외로웠겠다. 너는 집착형이라 모든 걸 같이하길 원하고 헌신적인데, 남편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네. 너 말대로라면 남편은 자기 세계에 갇혀 남들을 신경 쓰지 않네.”
맞았다. 남편은 혼자 살아야 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면 남들에게 선인이나 선비처럼 대우받으며 살 수 있었다. 지금도 딸이 감자가 먹고 싶어 사는 걸 보면, 딸은 자기가 산 정도만 먹고 싶은 거다. 그 정도 먹고 나면 다른 게 먹고 싶다.
하지만, 남편의 그때부터 몸에 좋은 감자를 딸이 좋아한다며 모든 걸 걸듯 계속 사 온다. 그만 사라고 해도 남편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남편의 과도한 사랑은 나와 딸이 부담스러울 때까지 이어진다.
우리가 좋아했던 돼지갈비를 이제는 보기만 해도 우리 세 식구는 부담스럽다. 질릴 만큼 먹었다. 그래도 남편은 또 보낸다. 우리를 위해. 나는 조심스럽게 톡을 보낸다. “힘들게 번 돈으로 그만 사서 보내. 우리가 먹고 싶으면 그때그때 사 먹을게.”
우리를 향한 남편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고 있다. 내가 바라는 건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 가길 바랄 뿐이다. 언제나 남편이 우리와 하나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가끔 아들에게서 남편의 성격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내 아들은 남편처럼 혼자만의 잘못된 사랑에 갇혀 살지 말고 사랑 속에서 올바른 사랑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어디서든 사랑받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병원 창문의 따뜻한 햇살처럼, 남편이 사준 풍성한 과일처럼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우리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
2024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