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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Feb 25. 2024

가족의 복잡한 색깔 : 아빠! 공감 좀 해주세요!


월요일부터 내린 비는 오늘 아침 눈으로 바뀌면서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었다. 서울의 거리는 오랜만에 설경다운 설경을 선보였다. 아침 일찍 출근한 남편은 가족 톡에 아름다운 북한산의 눈꽃 사진을 보내면서 대화의 활기를 띠었다. 


“오늘 눈꽃이 무척 예쁘네. 북한산이야. 점심값 보낼 테니 그쪽 가서 아점 먹어. ‘들꽃 한정식인가?”라는 문자에 나는 아침부터 이해 안 되는 남편에게 화를 낼 수가 없어      


ㅋㅋ 우린 별로나중에 당신 시간 될 때 가족 식사하지.”     


“아…. 눈 구경하러 다녀오라 한 거지오랜만에 예쁘게 핀 눈꽃이라.”라는 남편 답에 딸 또한,     


사진 봤으니까 됏오밖에 너무 추워.”라며 이쁘게 거절했다.     


여기서 그만했으면 그래도 ‘원래 아무 생각 없는 남편이니깐!’이라며 나만 실망하면 되었다. 뜬금없이 


“내일부터 걱정이네.”라는 남편 톡에 딸은,

“뭐가??”


“밥…. 하하”

“밥은 내가 하는데??”라며 우리는 또다시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남편의 설경 사진으로 우리의 아침은 포근하게 시작할 수 있었지만남편의 떨어지는 공감 능력은 곧 가족 간 갈등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딸과 함께 대전 성심당을 다녀온 날 저녁에 무시무시한 생리가 터졌다. 그래도 이번 달은 아이들과 집에 있고 싶어 참아보려고 했지만, 어제 오후부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라인댄스 학원도 다녀왔지만, 생리량이 많아지면서 몸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몇 군데 병원을 알아보다 송파에 있는 한방병원에 오늘 입원하기로 했다. 딸은 엄마 입원하기 전에 좋아하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며자신이 치킨을 쏘겠다며두 마리나 시켜주었다어제 받은 용돈으로 산다는 딸이 이뻤다.      


나는 아들에게도 만 원 내라고 했다. 가족은 서로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건 함께하는 책임이란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또한 혹시나 내가 없어도 둘이 언제나 아끼며 돕고 살라는 의미에서다     


이렇게 아이들도 엄마 병원 간다고 신경 쓰는데, 남편은 내가 어느 병원에 왜 가는지도 관심도 없다기대도 안 하지만눈치 없는 말이나 문자는 삼가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셋은 한정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남편과 외식하면 대부분 한정식이었다나는 싫었지만남편과 잘 지내고 싶어 웬만하면 남편 뜻에 따라 주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언제부터가 가지 않았다.


지금도 남편은 외식하면 한정식을 고집하려고 한다. 한번은 가족 톡에서 외식 장소를 정하는데 남편이 한정식을 말하자, 딸이 아빠우리는 아빠가 양고기 싫다 해서 아빠한테 가자고 안 하잖아근데 왜 우리에게 자꾸 한정식에 가자는 거야?”라며 직접적으로 문자를 남겼다.     

 

나는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이들 어릴 때는 집에서 밥하기 힘들고, 싸우기 싫어서 따라 준 거다. 이젠 아이들도 원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신 해준다.     




나는 매일 딸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다음 식사는 무엇인지 물었다. 이유는 내가 먹고 싶은 걸 해달라는 의미도 있었고, 준비해야 할 것이 있으면 같이 장 보러 가기 위해서다. 오늘도 나를 위해 시켜준 치킨을 먹으면서,      


“이쁘나, 내일 아점은 뭐 해줄 거야? 엄마 가지전에 마지막 식사야.”라고 웃으며 말하자,  

    

“내일 아점은 치킨텐더와 불닭 볶음 소스에 야채볶음이랑 ‘명란 바게트’ 먹으려고. 엄마는 짬뽕밥도 해줄까?”라며 물었다.      


“아니. 난 라면을 먹고 가고 싶어딸이 끓인 라면. 그리고 엄마 1시에는 나가야 해.”라고 말하며 아침 먹을 음식까지 정했다. 


나는 솔직히 마음이 심란하고 불안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불규칙한 생리와 많은 양의 출혈로 이번은 잘 견딜 수 있을까?’     


몸도 시원찮고 병원 갈 준비에 바쁜 아침에 지금 북한산에 가서 아이들과 외식하라고그것도 우리가 좋아하지도 않는 한정식’ 집에 가서. 눈치가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 남편이 이젠 서운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     


월초에 퇴원하면서 기운이 없어 집안일을 못 한다고 말했다. 식사와 청소는 딸이 할 거고, 설거지와 빨래, 쓰레기는 아들이 할 거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내가 입원한다고 하니 아이들 밥이 걱정이라는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문자에 딸에게 미안함까지 들었다.     




어제저녁 늦게까지 딸은 아들 영어 공부를 시켰다. 1시간 이상 시키고 우리는 다시 이야기 세상으로 들어갔다. 이때 라면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는     


엄마는 딸이 끓여주는 라면이 제일 맛있더라신기하게 뭔가 틀린단 말이야아들너도 누나가 끓여주는 게 최고지?”라고 묻자, 아들은 가만히 생각하다 라면?”이라고 말하며 -하면서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들공감 좀 하자엄마가 누나를 칭찬하면너도 맞장구를 쳐야지무슨 생각이 그리 많을까? 아들아! 엄마 없으면 누나가 차려 준 밥 먹지 않아? 지금은 엄마가 있어도 모든 걸 누나가 하잖아? 그럼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누나가 최고지!’라고 말한 뒤 생각해도 늦지 않아.”라고 웃으며 말하자, 서운했던 딸이     


엄마이런 것도 닮나 봐어쩌면 아빠랑 저렇게 똑같지내가 아빠한테 딸기 시루’ 케이크 보여 주니깐아빠가 그냥 딸기를 먹지 그걸 왜 사 왔냐는 거야! 나도 이거 사러 대전까지 가는 게 웃긴다는 거 다 알거든. 하지만, 꼭 그렇게 말해야 해?”라며 흥분하고 있었다. 우리 셋은 크게 웃으면서,     


내 멋쟁이 아들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엄마가 우리 아들 못하는 거나 황당한 거 꼭 집어서 너는 왜 그렇게 하니라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하면 좋아안 좋아엄마는 항상 아들이 잘못해도 아이구내 멋쟁이가 그랬어괜찮아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말하지그리고 잘한 건 칭찬 많이 해주고.”


“응”이라며 아들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아들아우리 아들도 누나가 잘한 거 있으며 칭찬해 주고누나가 최고라고 말해주어야 하는 거야그래야 누나도 아들에게 좋은 말 많이 할거고. 엊그제 엄마 깜짝 놀랐어.”


“왜?”라며 아들은 뭔 일인지도 몰랐다.     


아빠가 보낸 음식 택배를 부엌까지 아들이 가져다 놨지그때 엄마가 상자 안에 뭐 있나 열어 보라니깐아들이 누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며 누나한테 하라고 하면서 기분 나쁘게 말하고 가버렸잖아. 아들! 아들 생각에 누나보다 더 일하는 거 같아 억울할 수 있어.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럼. 뭐라고 말해? 내가 많이 하는 건 사실이잖아?”라며 억울하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들아! 엄마라면, 귀찮아도 뜯어보겠지만, 뜯기 싫었으면, 나 방송 듣다 왔는데 마저 듣고 와서 하면 안 될까?’라든가 화장실이 급해!’라든가 상대방이 들었을 때기분 나쁘지 않게 말할 거 같아     


매일 누나 뭐 사면 꼭 동생 거라고 챙기고, 친구랑 약속할 때도 아들 먹을 거 챙겨주고 나가잖아. 아들이 사사건건 계산하고 이쁜 말 안 하면 가족끼리 매일 싸우게 되는 거야. 학교나 직장에 가서도 마찬가지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하기 싫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할 때표현하는 방법을 바꿔야 해어쩌면 그렇게 아빠처럼 하니엄마가 매번 황당해하는 거 보면서.”라고 말하자, 딸은     


엄마이런 것도 유전되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아아니면 나쁜 것만 닮는 건가?”라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요즘 아빠하고 별로 같이 있지도 않잖아? 아빠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니깐? 그리고 아들은 밥만 먹으면 방에 들어가 핸드폰 보잖아. 근데 뭘 보고 닮는 걸까? 신기하네?     


그래도 딸이 아들 생일날, 고깃집에서 아빠 사회성 많이 좋아졌다.’라고 말할 때 엄마는 웃겨서 혼났다 야.”라고 말하자 아들딸도 큰소리로 웃었다.     


“엄마 정말 많이 좋아졌어. 웃으면서 말도 먼저하고.”     


“그래서 사람은 사회생활을 해야 하나 봐엄마는 아빠 힘들고 위험한 일하는 거 싫었는데 집에 있는 거보다 나은 것 같아너희들한테도 그렇고. 너희도 아빠랑 있을 때 많이 힘들었지?”라고 말하자, 아들은 웃기만 했지만, 딸은 웃으면서 인정했다.      


“엄마는 20년간 미치는 줄 알았다. 이젠 너희가 크니깐 이해 해주는 자식들이 있으니 감사하네. 신기해 아무튼. 나쁜 사람도 아니고, 성실하고 똑똑한 거 같은데,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같이 있으면 모두가 불편하니 말이야.      


그래도 너희에게 최선을 다하는 거 잊지 마정말 너희라면 끔찍해저런 아빠도 없어엄마가 이혼 안 한 이유 알지딸도 이혼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엄마가 어떤 사람을 만난들 너희에게 아빠만큼 잘하겠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때로는 불편함과 갈등을 동반하기도 한다이때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가족 간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켜 주며이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가족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로 홀로 서 있는 남편을 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남자인데그렇다면 나의 책임과 의무는 어디까지일까사랑을 주는 것보다 받는 걸 좋아하는 나만 아는 이기적인 내가 어디까지 남편을 포용하고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결국가족의 풍경 속을 들여다보면사랑과 갈등이해와 배려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복잡하고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서로에게 힘과 위안을 주면서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야 하는 공동체이다.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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