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의 현실과 열망 :아빠와 다른 우리 세식구
한 여름날, 병원에서 아이들과 광복절 전날 퇴원한 나는 광복절 다음 날 친구들과 강원도로 놀러 갔다. 오랜만에 가는 여름, 휴가이다. 작년에는 암이 재발하고 몸이 힘들어서 휴가는 꿈도 못 꾸었다.
결혼 초창기는 아이들이 어리고 차가 없어서 휴가라는 것을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결혼 5년 정도 지나서 차를 처음 샀을 때, 5살 된 딸은 차를 타면서 "엄마! 이렇게 좋고 편리한 차를 왜 이제야 산 거야?"라고 물었다. 난 한마디로, "돈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어린 딸은 더 이상 묵묵히 대답이 없었다.
도움 없이 아이들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였을까? 결혼하고 시댁과 남편에 대한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투사되어 딱딱하게 말이 나간 걸까?' 그 당시 나는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쳐있었다.
차를 사고 남편은 시간만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곳부터 멀리까지 여행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부담과 무게감을 느꼈다.
학원 일 하고 집에 와서 매일 아이들 씻기고 요리해서 먹이고, 빨래한 거 정리하면, 하루도 새벽 1시 전에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은 기억이 없었다. 일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가 오셔서 4시간 정도 청소하고 어른이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은 해주셨지만, 아이들 음식은 내가 다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바쁘고 힘든데도 아이들 이유식, 젓 병 삶기, 고추장 등 아이들이 먹는 음식은 거의 내가 직접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미련을 떨었는지? 지금은 내 몸 생각해서 시켜 먹거나 밀키트 음식을 자주 해준다. 그것조차도 나름대로 바쁘고 버겁다.
학원 할 때 휴일은 무조건 쉬고 싶었다. 어린 자식들도 귀찮고, 야외로 피크닉 가는 것은 더더욱 귀찮았다. 사우나가서 혼자 놀고 싶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먹고살기 바빴던 나는 그 흔한 목욕탕도 못 다녔다.
남편과 아이들이 쉬는데 집에 있지 말고 어디 가자고 하면 너무 부담스러웠다. 평일엔 학원과 아이들 챙기느라 바쁘다. 주말엔 온전히 쉬고 싶지만, 남편이 수업하면 평일보다 더 힘들게 혼자 어린 자식들을 돌봐야 했다. 주말엔 일 도와주시는 도우미 아주머니도 안 오신다. 아이들 먹을 것만 하루 종일 해도 바쁘다. 그런 나에게 야외로 소풍 가자는 소리가 즐거울 리 없었다. 피크닉을 가기 위해서는 음식도 준비해야 했다. 그때만 해도 외부 음식을 잘 먹이지 않았기에 과일부터 음료 식사까지 전부 준비해야 했었다.
일요일 아침에 나는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주었다. 그 시간은 내게 유일한 휴식이었다. 아들이 어려서 영·유아반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교사한테 가고 부모들은 뒤에 앉아서 아이들을 지켜본다. 그때 나는 거의 졸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떨 때는 침까지 흘리면서 자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창피했지만, 매일 모자라는 잠의 생리적인 욕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수업이 끝난 아들이 와서 깨우면 나는 아들과 교회 식당으로 갔다. 남편한테는 시간 맞추어 오라고 하고 딸도 교회 수업이 끝나면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일요일 아점을 해결하는 것도 나에게는 큰 휴식이었다.
교회가 끝나면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인근 호수공원이나 박물관 등을 갔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우나에 데려다주고 세 명이 놀러 다녔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아빠였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유방암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내가 죽기 전에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고,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식구는 일주일씩 일 년에 몇 번 전국을 돌아다녔고, 해외여행도 몇 번 갔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된 후론 휴가를 안가거나 못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보통 다른 집들의 아이들은 공부만 하라는 부모님과 평상시에 사이가 좋지 않다. 이런 경우, 여행처럼 오랜 시간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다른 집과는 달랐다.
우선 아이들이 커가면서 더욱더 내성적으로 변하고 친구들과 있는 것을 귀찮아했다. 아빠랑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빠의 성격을 닮아가고 있었다. 각자의 방에서 핸드폰이나 컴퓨터와 노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이 지금은 핸드폰 중독이다. 나도 아이들도 알지만, 막을 수가 없다. 막으면 막을수록 싸움이 된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더 심해진 것 같다. 아빠도 공부한다고 방에서 나오지 않고 아이들도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는 나의 부재이다. 병이 깊어지면서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휴가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관심사와 요구사항을 갖고 있음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세 번째인듯하다. 아이들이 아빠와 세 명이 가는 것은 이제는 싫다고 한다. 아빠와 우리가 좋아하는 기준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음식부터도 다르다. 아빠는 건강한 음식인 채소나 여행 간 곳 특산물을 먹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새로운 것보단 치킨, 돈가스 등 패스트 푸드나 육류를 좋아한다. 육류도 아이들은 튀긴 것이나 구운 것을 좋아하지만 아빠는 삼계탕처럼 물에 빠진 것을 좋아한다.
또한 아이들과 남편의 휴가 목적이 다르다는 점도 영향이 크다. 아이들과 나는 여행지에 가면 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우리는 그것만 하고 돌아오고 싶어 한다.
즉, 스키를 타러 가면 눈 위에서 하루나 이틀 동안 스키만 탄다. 그리고 콘도에서 쉬면서 맛난 음식 먹고 자유시간을 즐기다 집으로 오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아빠는 스키나 운동은 별로이다. 우리의 욕구를 먼저 채워준 아빠는 스키장에서 나오면 집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지방 박물관과 역사적인 장소를 다 가고 싶어 한다. 아이들과 나는 솔직히 피곤하다. 우리는 호캉스처럼 목적지 가면 쉬고 놀고만 오고 싶다.
한번은 설악산을 같이 갔다. 우리는 산을 오르다가 그만 올라가고 내려가길 원했다. 하지만 아빠는 흔들바위까지 간다는 것이다. 우리 셋은 먼저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배가 고파 절에 들러서 절 음식도 먹어보고 간단히 절도 구경했다. 그리고 우리는 차 있는 곳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나와 아이들은 콘도나 팬션가서 쉬고 싶었다. 몇 시간 후에 나타낸 아빠는 또 다른 박물관에 가고 싶어 했다. 박물관에 가면 아이들은 나만 쳐다본다. 나는 중간에서 우리만 먼저 숙소에 오던지 아빠 욕구를 위해서 박물관을 같이 구경해야 한다. 만약 박물관을 구경하게 되면, 우리는 빨리 한 바퀴 돌고 나오는데 아빠는 기다리고 기다려야 온다.
언제부터인가 딸은 말한다. "엄마 우리 나 두고 엄마는 엄마 친구랑, 아빠는 아빠 친구랑 휴가를 가! 우리는 나중에 우리가 알아서 갈게."
나는 "그래도 방학인데 바다라도 보면 어때?"라고 말한다.
딸은 "그럴까?"라고 말하다가 "나중에…."라고 말한다.
아들은 아예 들으려고도 안 한다.
내가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하면 아이들도 생각은 해보겠지만, 지금은 나도 힘이 든다. 고1 아들과 수능 시험 얼마 남지 않은 재수하는 딸 데리고 휴가 간다는 것도 맘에 걸린다.
결국 나는 올여름 휴가는 친구들과 짧게 1박 2일 코스로 양양과 서초에 다녀왔다.
이번 수능이 끝나고 대학 합격이 되면 겨울 방학 때는 딸과 아들을 데리고 겨울 휴가를 갈 예정이다. 아빠도 같이 가주면 좋겠지만, 안되어도 아들딸과는 가려고 한다.
내가 가족 여행을 계획하는 이유는 언제나 똑같다.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쌓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함께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계속 미루어지고 있다. 내 몸이 약해져서 못 움직이기 전에, 아이들의 성장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