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함박눈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병실 창문에서 바라보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솜털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은 모습은 마치 환상 속의 세계처럼 반짝이며 아름답다.
아름다움 뒤에 숨어 있는 나의 걱정은 눈길을 운전해야 하는 남편에게로 향한다. 작년부터 운전일을 시작한 이후로 그의 안전이 내 마음 한켠을 차지하여 편한 날이 없다.
며칠간 몸살 기운까지 겹쳐 여러 합병증으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감기 같은 유행성 병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몸이 약해지면서 생각지도 못한 병이 힘든 몸을 더욱 지치게 했다.
짧은 시간이라도 통증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생활 덕에 일상생활이 더 귀하고 소중하다는 걸 느끼는 건진 모르겠다. 소망이 되어버린 당연한 일상이 나에게는 더욱 소중해지고 있다.
코로나 시대가 오기 직전, 다도학원을 해보려고 했다. 훌륭한 강사의 만남은 새로운 세계를 도전하게 만들었다. 다도 도구 중에 은으로 제작된 차 도구에 관심을 가졌다. 은으로 만들어진 다도 세트가 가격이 높았지만, 메리트가 있었다.
우리나라 장인 여러분을 만나러 다니며, 그들의 손길에서 전해지는 따듯함과 열정을 느꼈다. 그중 한 분과는 꾸준히 연락하며 때때로 만나 술 한잔에 삶을 나눈다. 얼마 전에도 마사지 기구의 도금을 알아보기 위해 만났다. 식사하며 사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분은 나만 보면 내 삶의 방식을 신기해하셨다.
“당신 같은 사람도 고민이 있어?”라고 물어보셨다.
“왜요?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저 많이 힘들어요.”라며 웃으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자, 웃기만 하셨다.
“사장님! 살면서 최고인 사람과 최선을 사람을 보면서 우리는 최선보다는 최고를 원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처음으로 남편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남편이 사람은 너무 좋아요. 가정에도 최선을 다하고요. 지금 열심히 일하는 거 보면서 안타까워요.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자는 시간만 빼고 일해요. 그 와중에 내가 없으니깐 식사 때 아이들까지 챙겨요.
살면서 저런 아빠도 있구나! 나는 아들밖에 모르는 집안에서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는데.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부모 밑에서 살았는데, 남편의 자식 사랑이 상상을 초월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쳐요.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아빠를 원하는 게 아니고 최고인 아빠를 원해요. 만약 나에게 한 달에 단돈 2~3백만 원이라도 가져다주면 감사하다며 잘 쓰고 모자라는 건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근데 저에겐 절대 십 원도 안 주잖아요. 자기 보험료 70만 원만 주고요. 번 돈으로 딸 100만 원 아들 30만 원 주고. 내가 없으니 아이들 음식을 매일 배달 시켜요.
이것도 문제예요. 아이들 먹고 싶은 걸 보내야 하는데 아빠가 봐서 몸에 좋은 걸 보낸다는 거지요. 냉동실에 음식이 쌓여요. 뭘 보냈는지 모르고 계속 보내요. 유통기간 넘기는 건 다반사고요. 요즘같이 물가가 비싼데 버리면 얼마나 아까워요.
딸이 불만을 말하기에 같이 메시지를 보내요. 그만 보내라고. 힘들게 번 돈으로 먹지 않는 거 보내지 말라는 거지요. 그리고 다 먹으면 보내라고.
일하다가도 식사 시간 되면 와서 해주려고 연락해요. ‘아빠가 지금 집에 가면 6시 반쯤 되는 데 가서 해줄게.’라고 하면 딸은 ‘나 배고픈디?’라고 말하며 아들과 둘이 먼저 먹어요.
같은 음식을 해주어도 몸에 좋은 채소를 많이 넣는다고 음식 맛을 버려요. 아빠의 노력과 최선은 알지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걸 해주길 원해요. 최선이 아니라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남편은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외롭지 않을까요? 성격이 남달라 모를진 모르겠지만, 안타까워요. 저 또한 남편이 우리와 융화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는데 노력하면 할수록 나만 힘들어지더라고요. 간섭으로 느껴요. 이제는 포기하고 나만 행복해지려고요.”라고 말하며 웃자, 진지한 표정으로
“아. 그거구나! 나도 그렇게 산 거 같아요. 당신 말을 듣고 있으면, 나를 되돌아보게 돼요. 난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남자들 다 그렇게 살지 않나요?”라며 아쉬워하면서 씁쓸함을 표현했다.
이런 대화를 통해 남녀의 역할과 인식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자는 단세포이고 여자는 다세포라는 걸 인정 한다면 부부관계를 이해하기가 좀 더 쉬어진다.
엄마는 청소하면서 세탁기도 돌리고 밥도 하면서 아이들도 돌본다. 하지만, 남자는 청소하라면 청소하나 밖에 모른다. 두 가지도 힘들다.
회사에서도 남자 상사와 여자 상사를 비교해 보면 쉽다. 각 부서에 어떤 일이 터지면, 남자는 누가 잘못했는지 원인부터 찾는다. 반면에 여자는 일부터 해결한다. 그러고 나서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진다.
딸이 고3 때 “엄마! 엄마가 말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뭔지 알았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조별 발표가 있었단다. 한 친구가 꼭 자기와 하고 싶다고 해 3명이 했단다. 그 친구가 너무 열심히 준비해 친구와 딸이 말릴 수가 없었단다.
하지만, 그 친구가 준비한 것은 발표할 수도 그 친구를 시킬 수도 없어, 딸과 또 다른 친구는 서로 눈짓으로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줘!’라는 간접 표현을 보냈지만, 열심히 하는 친구는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고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조금 모자라더라도 상대방의 필요와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병실 창문 너머로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나는 내 삶과 가족에 대해 깊이 사색한다. 때로는 최선이 최고가 아닐 수 있고, 때로는 최고보다는 함께하는 순간들이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걸을. 내가 가족과 함께 겪은 모든 순간이 나에게 교육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새벽의 함박눈처럼, 내 삶의 풍경도 때로는 차갑고 외롭지만, 그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깨달음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병실에서, 2023년 마지막 창밖의 눈과 함께.
202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