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보면 왜 유방암에 걸렸는지 의구심을 갖는다. “강인한 당신이, 정말 암에 걸린 게 맞아?” 성격상 암에 걸릴 거 같지 않단다. 내가 힘들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항상 강해 보이는 나는 남들과 함께 할 때 환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 안의 고통과 싸움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힘들고 불편하면 남도 불편하다. 내 몸이 편하지 않을 때, 나는 혼자가 된다. 심지어 가족들도 멀리한다. 나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꼭 만나야 한다면 화장으로 가면을 만들다. 힘들어도 목소리엔 항상 힘을 담는다. 헤어지고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남들과 있을 때 자신감 없는 모습은 보이기 싫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정말 환자 맞냐고?” 묻는다.
매일 마사지 해주는 언니가 물었다. “왜 이렇게 힘들까? 남들은 생리를 오래 하고 싶어 약도 먹는데 생리를 멈추길 바란다니?”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기는 손도 너무 이뻐! 일도 안 하고 살았어? 몸에는 군살도 없고 셀룰라이트도 하나도 없네. 정말 50대 맞아?”라며 부러운 듯이 말했다.
그들이 궁금한 건 그게 아니다. 고민 없고 모든 걸 다 가져 보이는 내가 왜 병원에 있는지 알고 싶은 거다.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지금의 나를 보면 이해 못 할 수 있다. 심지어는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병원에서 해주는 밥 먹고 매일 마사지 2시간씩 받으면서 편히 놀고 있어도 돈 걱정 없이 사는 모습. 말 잘 듣는 아들딸과 남편을 보면서 부러워한다. 나는 말없이 웃는다. 그러다 하염없이 운다.
내가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까지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나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알아주어야 하는 남편은 외면하고 있다. 결혼 초창기부터 둘째를 낳아 키울 때까지 남편과 시댁에서 한 행동들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나 또한 남편에게 막말하며 적지 않은 상처를 주었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내 인생을 말살한 남편과 시댁 식구가 용서되지 않는다. 고인이 된 남편 누나는 더더욱 용서되지 않는다. 내 마음에 용서가 되지 않으면 내가 더 비참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용서하질 못한다. 죽으면 용서가 될까?
자식을 지키기 위해 내 모든 걸 버리고 10년이란 결혼 생활 후에 맞이한 손님이 유방암이다. 유방암이 나에게는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때 유방암이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자살했거나, 미쳐서 정신 병원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찾아온 유방암은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왔다. 내가 버리지 못한 소중한 가정을 무너트리지 말라고 온 고마운 손님이다. 나를 살리려고 온 병이다.
평생소원인 행복하고 평범한 가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버릴 수도 없었다. 우리가 이혼하면 아이들은 보육원으로 가야 한다. 시댁도 친정도 아무도 우리를 받아 줄 곳은 없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 없이 살 자신이 없었다.
우리 아이들 결혼할 때는 ‘집안을 꼭 보고 보내리라.’ 나는 우리 집안도 내세울 게 없었기에 상대방 집안을 논할 처지가 못 되었다. 하지만 내 자식은 다르다. 내가 지킬 것이다. 안되면 혼자 살아도 좋다. 결혼은 안 해도 된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연애는 많이 하라고. 동거해도 좋다고. 하지만 혼인 신고는 아이를 가진 다음에 하라고.
아들에게는 여자 친구를 만날 때, 그 여자의 머슴이 되어도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라고.
딸은 너를 위해서 머슴으로 살아 줄 남자를 만나라고. 그래도 살면 힘들다고.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원하면 내 모든 걸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 있었다. 나의 애교와 친화력, 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착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의논하며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몇 년 전 남편과 말다툼하면서 남편이 나에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며 “다른 남자를 만났으면 사랑받고 살았을 텐데. 우린 너무 다르지?”라고 말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용서의 빛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의 아픔과 사랑을 깨달았다.
“아니! 당신은 누구와도 못 살아. 정말 당신 사랑한다는 사람 있으면 가도 좋아. 내가 돈도 줄 수 있어.”라고 말하며 운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자꾸 물어본다. “남편이 주식과 코인으로 돈을 날려서 그러냐고?”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결혼 후, 돈은 나에게 끊임없이 있었다. 많은 돈은 아니어도 신기하게 돈이 없어 힘든 적은 없었다. 내 마음의 상처가 문제다.
용서할 수 없는 남편과 시댁의 행동들. 내 자식이 어렸을 때 한 행동들을 하나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의 남편 행동도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지켜온 내 가정을 깰 생각도 없고, 남편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다.
남편은 나에게는 보여지는 남편으로, 아이들에게는 아빠로서만 존재해 주길 바란다. 더 이상 기대하면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과거로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아이들과 지금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다. 나는 내 자식들이 자랑스럽다.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만족을 아는 착하고 순한 아이들이다.
딸은 항상 말한다. “엄마!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행복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어. 과거 어느 시점으로 가도 행복할 거 같아.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라고 말하자,
아들은 “우리가 잘 사는 거야?”라고 물었다.
항상 부족한 아들 걱정이 딸에게 전이 되었는지 딸은 아들에게 ‘엄마 아들’이라는 호칭을 자주 쓴다.
“엄마 아들! 너 고민이나 불만 있어?”라고 딸이 묻자,
“아니”
“하고 싶은 거 못한 거 있어?”라며 또 묻었다.
“아니”
“가지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그럼 행복한 거지. 난 다시 태어나도 지금처럼 살 거 같아.”라는 이 말은 나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었는데. 내 자식이 살고 있구나! 감사하네! 성공했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가정을 지켜온 보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아이들이 나에게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말해준다. 적절한 시기에 유방암이 와서 지킨 가정. 이제는 내 몸이 회복되어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고 싶다.
나의 투병은 삶의 새로운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유방암은 내 삶을 바꾸었고, 나는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내 아이들, 나의 소중한 가정,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밝혀줄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건 나를 더 강하고 지혜로운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