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경 Jun 13. 2024

투병 생활 속에서 돈보다 빛나는 가족과의 시간

   

우리가 살면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젊은 시절, 나의 오직 출세와 돈을 위해 달렸다.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기에,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점점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행복과 만족은 물질적인 풍요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순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결혼과 동시에 출세는 포기했다. 하지만 가난에서만은 벗어나고 싶었다. 나와 같은 불행한 어린 시절의 환경을 내 자식들에겐 대물림 해주고 싶진 않았다. 이를 위해 돈을 모으는 데에 전념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열심히 일했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결혼 초 함께 학원을 운영한 남편은 나에게 돈에 미쳤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정말 내가 돈에 환장했나? 그래도 지금은 돈을 모아야 해. 내 자식들에겐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려줄 수는 없어.’라고 다짐하며 참았다.     




결혼 생활 10년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들과 학원을 운영하면서 제법 돈을 모았다. 하지만, 나에게 찾아온 손님은 유방암이란 무서운 병이었다. 11년간 4번의 유방암 수술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곧 회복될 거라는 희망 속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듯 내 몸에 새로 찾아온 건 유방암보다 더 무서운 골수암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깊은 슬픔에 빠졌던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이렇게 생을 마감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 동안 즐겁게 살아야 했다.      




우선 내 소중한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퇴원 후 딸과 약속한 신라호텔로 망고 빙수를 먹으러 갔다. 얼마 만에 가는 호텔인가? 그것도 아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자!’라며 가는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즐겁고 힘찼다.     


호텔에 도착해 공용 주차장에 주차를 마친 후, 우리는 호텔에서 운영하는 순환버스를 타고 호텔 로비로 갔다. 10시 오픈에 맞춰 출발했지만, 도착시간은 10시 10분이었다. 빨리 가서 창가의 좋은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창가는 이미 만석이었다.     


우리는 밖이 보이는 곳에 앉아 망고 빙수를 주문했다. 딸은 빙수와 망고를 따로 달라고 했다. 함께 준 망고 아이스크림과 팥이 이쁘게 나왔다. 넘쳐나는 우유 빙수를 뜨는 우리의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 제주산 애플망고가 6개 20만 원 정도 하는데 여기 나온 망고가 2개 반이래! 그래서 애플망고 처음 먹는 사람들도 많이 온 데.”     


울 아그들도 처음인가? 망고는 많이 먹었어도 애플망고는 안 먹어봤나?”      


“웅. 아빠가 망고만 사 오고 엄마는 망고 안 좋아하잖아.”     


나는 애플망고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많이 먹어본 맛이었다. 병원에서 다른 환자분들이 가끔 고맙다며 주고 간 거였다. 이게 이렇게 비싼 건지는 몰랐다. 망고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그들에게 새삼 미안함이 들었다.     


빙수를 먹으며 뭐가 빠진 듯했다. 연유였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나와 아들은 연유를 추가로 달라고 요청했다. 연유를 넣어 먹으니 내가 원하는 빙수 맛이 났다. 우리는 모든 빙수를 먹고 다른 음식을 주문하려고 했을 때,     


“아그들아! 우리 점심은 나가서 한식을 먹으면 어떨까? 샌드위치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네!”라고 웃으며 말하자, 딸은 엄마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이      


“그러면, 우리 부대찌개와 피자 먹으러 가자. 거기 맛있데. 리뷰가 4,000개도 넘어.”

     

“그러자! 아들 괜찮지?”라고 묻자, 아들도 얼른     


“어.”라며 짧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빙수값을 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쁜 딸! 딸이 원래 빙수 사주기로 했으니깐 여긴 딸이 계산해 주면 어떨까?”라고 말하자, 당황한 딸은 나를 보고 웃으며,     


“알았어. 알았어. 내가 낼게. 대신 아들이 점심 사. 거긴 여기의 3분의 1 가격밖에 안 될 거야.”라며 아들의 의견을 물었다. 알겠다는 듯이 웃으면서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계산하고 부대찌개 집으로 갔다.     


소문만큼 부대찌개도 푸짐했고 피자도 만족스러웠다. 가격 또한 3만 원대 후반으로 우리를 만족시켜 주었다. 나는 아이들과 즐거운 식사를 한 후,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웃음이 나왔다.     




그깟 10만 원짜리 방수에 돈이 아까워 딸에게 사라고 하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아직도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모습을 보면서 슬펐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 모습에서도 감사함을 느꼈다. 돈에 집착했던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이 순간, 아이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진정으로 깨달았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돈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큰 깨우침을 주셨는데도 미련한 나는 아직도 돈에 얽매여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단 말인가? 엄마로서 방수 값이 아까워 용돈 받는 딸에게 사라고 하다니? 죽을 때까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그걸 통해 더욱 성장하려고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에게 진정한 행복과 사랑을 물려주고 싶다. 내가 깨달은 이 소중한 가치를 자식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돈이 아닌 사랑을 대물림할 수 있는 엄마가 되겠다고.


20240610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구순 잔치 : 빛나는 우리 가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