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날은 축복된 날이어야 한다. 일 년에 단 하루.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한없이 행복에 잠겨야 하는 그런 날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고 행복한 생일을 맞이했었을까?
나의 삶을 돌아보면 축복 속에서 행복했던 생일날을 지내기보단 우울하고 힘들었던 생일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지금 내 앞에 놓인 현실은 더욱 나를 가슴 아픈 날로 다가왔다.
“유방암 뼈 전이”라는 사형선고 같은 진단을 받고 난 후 맞이하는 첫 생일이었다. 병실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게 마지막 생일일까? 아니 난 내년에도 여전히 행복한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 거야!’라며 혼자 위로하고 있었지만,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딸이었다.
“엄마, 금요일 저녁 시간 어때? 우리 그때 저녁 먹는 거 어떻게 생각해?”라는 이쁜 딸의 목소리에 나는 울컥했다.
“하하하. 역시 울 딸밖에 없구나! 엄마야 당연히 괜찮지!”
“대신 일요일에도 먹자. 그날이 정말 엄마 생일이니깐! 엄마는 한식, 양식, 일식 중 뭐가 좋아?”라며 나의 의견을 물어보는 딸의 밝은 목소리가 어느새 나를 웃게 만들고 있었다.
“하하하. 엄마는 다 좋아. 우리 이쁘니 멋쟁이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 좋은 데로 가자.”
“알았어. 그럼, 케이크도 그날 주문할 거니깐 꼭 와야 해?”라고 말한 딸이 그날 저녁을 위해 얼마나 정성스럽게 준비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아빠와 아들의 성격을 아는 딸은 혼자서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케이크를 주문하며, 우리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세심하게 챙겼다.
나는 이번 주 퇴원 입원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지만, 기특한 딸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딸은 양식과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마포에 위치한 “살롱 드 상상”이라는 프랑스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를 저녁으로 예약했다.
“엄마! 예약 끝났으니깐 그날 조심해서 와야 해! 케이크도 주문했어.”라는 딸의 목소리엔 기대와 사랑이 가득했다. 그녀는 나의 반응을 살피며 작은 디테일까지도 신경 쓰고 있었다. 그저 그런 식사가 아니라 마음을 담아 준비한 특별한 자리였다.
식당에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나를 반겼다. 딸의 안목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그런지 손님은 몇 테이블 없었다.
우리는 예약된 자리에 앉아, 항상 약속 장소에 늦게 나타나는 남편이 ‘언제 올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 예상과 달리 남편 트럭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나가서 아빠 차 세울 자리 봐주고 같이 들어와!”라고 말하자, 이쁜 아들딸이 밖을 향해 뛰어나갔다.
갑자기 왼쪽 팔이 가려웠다. 속으로 ‘내가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며 겉옷을 올렸다. 그런데 뜻밖의 손님인 모기가 나의 피를 빨아먹은 거였다. 팔뿐만 아니라 가려움이 얼굴로 번져 이마에도 모기 물린 자국이 크게 생겼다.
여기저기 참기 힘들 정도로 가려웠다. 나는 주인 웨이터를 호출했다. 그분은
“저희는 모기는 없어요. 날 파리는 있어도?”라며 처음에는 부정하셨다. 하지만 점점 부어오르는 내 팔과 이마를 보시며 어찌할 봐를 몰라 하셨다. 우선 모기향부터 가져다주셨지만, 가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때 남편과 아이들이 들어오면서, 남편은
“어! 모기가 정말 있네? 여기 날아다니잖아? 이 근처에 공원이 많아서 그런가 보네?”라고 말하자, 주인분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저희도 당황스럽네요! 모기향도 피워 놨는데.”라며 난처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손으로 이마를 만지자, 부기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팔에도 모기 물린 자국이 점점 넓어졌다. 벽에 있는 거울을 보고 싶었지만, 불편한 다리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식당의 다른 손님이나 주인분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배가 고팠던 딸은 엄마의 불편함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저희 음식 주세요!”라며 주문하자,
남편도 “서비스도 부탁드려요?”라며 분위기를 웃음으로 변화시켰다. 나도 딸이 힘들게 준비한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웃음으로 넘겼다. 그러자 주인분도 소독약을 가져다주시면서
“서비스로 와인을 드리겠습니다.”라며 나의 눈치를 살피셨다. 서먹한 분위기는 행복한 가족의 웃음으로 넘어갔다. 나는
“저희 여기서 못 마셔요. 포장도 되나요?”라며 농담으로 던졌다. 차를 2대나 가져온 우리는 와인을 마실 순 없었다. 게다가 남편도 딸도 술은 마시지 않는다. 아들은 미성년이고 나밖에 마실 사람이 없었다. 운전해야 하는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한 병을 드리겠습니다.”라며 이쁜 포장 케이스에 담아오셨다.
“이 와인은 프랑스 산으로 싼 게 아닙니다. 끝맛이 달아서 드시면 만족하실 겁니다.”라며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셨다.
기대 이상의 서비스에 내가 먼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감사합니다.”라며 웃자, 주인분도 한숨 돌리시며 주문한 프랑스 요리를 차례대로 주셨다.
음식은 기대만큼 훌륭했고, 우리의 만족감은 극에 다했다. 어디서나 불만이 많은 남편조차도 오늘만큼은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음미하고 있었다.
예약하면서 딸은 남편이 불평할까 봐 걱정했었던 것 같았다. 까다로운 아빠와 말 없는 아들까지도 만족해하자, 딸은 오늘의 요리와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가졌다. 네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한 코스 요리인 ‘파인 다이닝’ 식사는 대만족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딸은 엄마를 위해 시내 호텔에서 사 온 거라며 생각지도 못한 이쁜 케이크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오랜만에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기분이었다. 결혼해서 처음 느끼는 행복한 생일날이었다.
결혼 초는 남편의 기분에 따라 생일이 지나가거나, 의식적이었다. 의식적인 생일에도 남편의 돌발적인 행동이나 언사로 기분 좋은 날이 몇 번 없었다.
이번 생일은 재치 있는 이쁜 딸 덕에 맛있는 음식과 충분한 행복을 느꼈다. 나는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살면서 가족의 사랑이 이렇게 따뜻하고 든든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이 행복한 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오늘은 내가 살아 있음을, 사랑받고 있음을 온전히 느꼈다.
생일파티는 이렇게 가족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나는 오늘의 생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병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나를 괴롭히지만, 그 속에서도 딸의 사랑과 가족의 따뜻함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 떠오르는 오늘,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행복이 내 곁에 머물러 있다. 이런 작은 사랑과 행복이 나의 미래에 가득 차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