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래에 보내는 편지 :유방암을 이겨낸 글쓰기의 힘
초사고 글쓰기 미션 30일째로 마지막 날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올린 나는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다.
글쓰기를 시작해서 하루에 최소 한 두 편씩 써 내려간 나에게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마지막 글쓰기 주제는 "미래"이다.
'5년 후 원하는 것을 이루어낸 나를 상상하면서 어떤 말을 해줄 것인지 적어보자'이다.
5년 후에 살아있고, 지금처럼 계속 글쓰기와 공부를 한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강의를 하러 다니고 있을까?
몇 개의 콘텐츠 회사를 가지고 있을까?
모르겠다. 분명한 건 글쓰기 전보다는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 있을 거 같다.
살아있다면 유방암도 완치가 되어 병원과도 이별을 선언하지 않았을까?
내가 남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원까지 간 건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미국 유학 중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모든 건 바뀌었다.
아이를 임신하고 적자인 학원을 인수하면서 삶이 어려워졌다.
나는 아이와 가정의 경제를 위해 나의 꿈을 접었다.
학원이 자리를 잡아주어 가정 경제력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었다.
하지만 남편과 나의 욕심으로 주식과 사기로 큰돈을 날렸다.
키즈카페를 하는 도중 나에게 뜻하지 않은 무서운 손님이 내 몸에 찾아왔다.
학원 하면서 잘 들어 놓은 보험 덕에 나에게 찾아온 유방암은 가정 경제력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경제활동을 몇 년간 쉬었다.
아이들이 커가고 나의 손님은 떠날 줄 모르고 10년 동안 4번이나 찾아왔다.
남편은 작년부터 경제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점점 약해지는 몸에 나는 모든 의욕과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병원에 있을 땐 드라마에 미쳐 있었고, 집에 가면 술에 미쳐 있었다.
희망이라는 게 없었다. 그냥 주위에 피해 주지 않고 조용히 죽고 싶었다.
'불쌍한 내 인생!
어릴 때는 가난과 폭력 가정에서 우울하게 살았고,
평생소원인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싶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결혼했더니,
시댁 스트레스와 가치관이 다른 남편과의 잦은 싸움이 끈임 없었네.
설상가상으로 어릴 적 가난의 무서움이 다시 올까 봐 학원에 모든 걸 매달렸는데..''
이젠 놀아보지도 못하고 병들어 고통만 당하다 죽으면 더 억울할 거 같았다.
친한 친구가 2번째 유방암이 왔을 때,
"미친년! 돈만 벌다 살만하니깐 병이 오고 지랄이니?
너 죽으면 그 돈 있다고 가족들이 애썼다. 우리 엄마 최고다 할거 같니?
더 많은 돈 없나 할 거다. 이젠 아이들도 생각하지 말고 너만 생각하고 맘껏 쓰고 놀아라."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니? 돈이라도 많았으면 좋겠다.ㅋㅋㅋ"
항상 아끼고 절약하는 나를 보아온 친구는 화가 난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이런 말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난 언제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잘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3번째 수술 후, 지속적인 하혈로 쇠약해져 가는 몸이 나의 희망을 빼앗아 가기 시작했다.
작년 4번째 수술은 그나마 있던 나의 모든 희망을 다 가져갔다.
'정말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 차 있었다. 퇴원해서 집에만 가면 방탄한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시작한 글쓰기는 나에게 새로운 모험이었다.
글쓰기는 타고난 재주가 있는 사람만 쓰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처럼 무식하고 지식이 전부 한 사람은 쓸 수 없는 거로 여겼다.
우선 기초 상식이 필요할 거 같아 인터넷, 유튜브 등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다.
산만한 유튜브보다 '클래스 101'은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되어 있었다.
똑똑한 젊은 강사들의 강의는 일류급이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하고 싶은 일들이 여러 개 생겼다.
하지만, 고정관념이 박혀있는 내 머리가 이해는 해도 그들처럼 아이디어가 탁탁 떠오르지는 않는다.
지금은 글쓰기 연습과 책 읽기, 인터넷 사용에 대한 공부가 우선이다.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된다면 위에서 말한 나의 꿈들이 하나씩 이루어지지 않을까?
5년 후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나 스스로에게 "사랑하는 인경아! 정말 잘했어!
후회 없는 5년의 보람찬 시간이 지금의 결과를 낳았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