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월 15일. 그 어느 날 보다 귀한 날, 광복절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15일은 오랜 고난 끝에 일본의 속박에서 벗어나 한반도가 자유를 찾았던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을 경축하는 날이다.
어제 퇴원한 뒤, 집으로 돌아와서 나름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저께부터 잠을 설치고 있다. ‘잠을 잘 자야 하는데. 잠이 보약인데….’ 피곤함은 가득한데 밤마다 눈꺼풀은 눈을 덮질 못하고 있다. 오늘은 운동과 사우나도 쉰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빌려온 책을 반납했다. 1시간 돌고 나니 기분은 좋은데, 몸의 피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꽉 차 있는 느낌이다.
여수에서 나에게 선물처럼 대해주신 사장님은 나의 첫 직장인 S그룹에서 과장님으로 계셨던 분이셨다. 여수 여행 뒤, 한두 번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최근엔 연락을 못 드렸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갑자기 생각나서 안부 겸 카톡을 드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떻게 지내세요? 불볕더위는 한풀 꺾인 듯하네요. 건강은 괜찮으신 거죠?"라고 내가 먼저 보냈다.
잠시 후 "노방녀 방가. 지금 서울 올라가는 중. 일요일에 내려옴."이라고 답장을 주신 것이다.
'내가 노방녀라고? 그게 뭐지?' 궁금한 건 못 참는 나는,
"노방녀가 뭐예요?"라고 바로 물어보았다.
"노상 방뇨"라고 보내셨다. 나는 바로 웃음이 터졌다.
"크크크 맞아요. 제가 두 번이나 했어요."라며 답장을 보냈다.
노상 방뇨란, 경범죄로 길, 공원 그 밖에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함부로 침을 뱉거나, 대소변을 보는 행위, 그렇게 하도록 개나 동물을 끌고 와서 대변을 보게 하고 이를 치우지 아니한 사람에 대해서 처벌하는 경범죄이다.
사장님은 한국에 들어오셔서 승용차 대신 1-2용 캠핑카를 구입하셨다. 나는 사장님께 승용차를 안 사시고, 불편하시게 왜 캠핑카를 사셨는지 여쭈어보았다. 우리가 가서 좌석 비닐도 제거했을 정도로 주차장에서 움직임이 없었던 캠핑카이다.
물건을 살 때 가성비부터 따지는 나는 가끔 여행 가실 때 쓰기에는 가성비가 별로였기 때문이다. 사신 이유는 간단했다. 호텔에 묵으면 남이 쓰던 침구를 사용해야 한다. 깔끔하신 사장님다운 말씀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부자들은 다르구나!'
편한 곳, 깨끗한 곳이면 되는 나는 어디 가면 방값부터 생각한다. 하룻밤이라도 가격 대비 좋은 곳을 찾아서 편안한 휴식만 취하고 오면 된다. 몇 달 동안 마음먹고 여행 가는 것도 아닌데 비싼 캠핑카를 산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비이다. 오직 남이 쓰던 침구가 싫어서라는 이유로 5,000만 원을 주고 바로 사실 수 있는 사장님이 부러우면서도 '가치관의 차이가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말로만 듣던 캠핑카에서 잘 수 있다니 처음에는 설레었다. 나와 언니는 저녁 잠자리가 해결되어서 편하게 놀 수 있었다.
사장님은 "담에 올 때도 꼭 둘이 와!" 라로 말씀하셨다.
나는 "왜요?"라고 반문했더니,
"캠핑카가 두 명 이상은 못 자!"라며 웃으셨다.
"넵! 알겠습니다."라고 내가 짧게 대답하고 다 같이 웃었다.
저녁 내내 먹고 놀다 보니 잘 시간이 지났다. 사장님은 나와 같이 간 언니랑 캠핑카에서 자도록 준비해 주셨다. 우선 캠핑카를 바닷가 앞에 세워주셨다. 사장님 댁과 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화장실이 없었다. 캠핑카에서 처음 자보는 나는 낮의 호기심은 사라지고 망설이기 시작했다.
'잠자리는 편할지? 지나가는 사람은 없을지? 장마철이고 다행히 비는 멈추었지만, 덥거나 습하지는 않을지? 가장 중요한 화장실이 없는데 어떡하지?' 등등
다른 건 다 괜찮아도 화장실이 가장 문제였다. 나는 새벽에 한두 번은 화장실을 간다. 거기다 그날은 세 명이 늦게까지 맥주랑 많은 음료를 마셨다. 불안했다. 그때라도 호텔로 가고 싶었지만, 시간도 늦었고 시내라 호텔이 멀리 있었다. 운전할 사람도 없었다. 콜택시를 저녁 식사 때 장소가 애매해서 불렀었다. 바로 오질 않았다. 역시 시골은 시골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민이 많았지만, 캠핑카에서 자기로 하고 늦게까지 놀았기에 선택의 여지 없이 캠핑카로 왔다.
사장님은 꼼꼼히 잠자리를 불편하지 않게 준비해 주셨다.
"새벽에 정 급하면 그냥 나와서 볼일 봐. 여기 아무도 안 와!"라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도 "넵! 걱정하지 마셔요. 저는 급하면 해요."라고 대답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 좀 넘어 가슴이 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이유는 두 가지었다. 하나는 정말 쉬가 하고 싶어서였다. 또 한 가지는 언니가 술을 먹어서 그런지 코를 고는 것이었다. 좁은 장소라 그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다. 그 소리에 놀라 가슴이 뛴 것이다. 몸이 약해지면서 누워있을 때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져서 가슴이 자주 뛴다.
나는 우선 차 밖으로 나왔다. 캠핑카 뒤에서 바다를 향해 생리적인 욕구를 먼저 해결했다. 시원했다. 바람도 시원하고 내 몸도 시원했다. 언니 차에서 자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너무 불편했다.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가서 언니 몸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다시 자려고 누었지만,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언니가 많이 피곤 했는지 점점 콧소리가 커져만 가고 있다.
4시 넘어서 언니가 잠깐 잠을 깼다.
언니는 "왜 안 자?"라며 놀라서 나에게 물어보았다.
난 웃으면서 "언니의 음악 소리에 잠을 깼지요!"라며 웃었다.
언니는 "어머나 내가 코를 크게 골았어? 코 많아 골았구나!" 하면서 놀라 미안해했다.
"그렇게 크진 않았는데 캠핑카 안이 좁고 밀폐된 공간이라 크게 들린 듯해요. 내가 귀마개를 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깜박했어요. 괜찮아요. 나야 이따 차에서 자면 되지요. 일어난 김에 쉬나 한번 더해야겠다."라며 나는 차에서 다시 내려왔다.
갑자기 사람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볼일을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고 이를 어째? 누구야 이 시간에? 저 갈매기는 왜 저리 울어대는 거야? 내가 노상 방뇨하는 걸 알고 저리 시끄럽게 우나? 사람이 와서 우나? 우선 누가 왔을까?'라는 생각에 빨리 일어났다. 알고 보니 언니였다. 차에서 창문으로 나를 본 것이다. 쉬를 하고 마지막에 엉덩이를 터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는 것이다.
나는 "언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여수까지 와서 개 망신당하는 줄 알고…." 같이 웃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침 7시 조금 넘어 사장님께서 오셨다. 얼른 집에 들어가서 볼일 보고 샤워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새벽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그날 점심은 서대회 무침이 유명하다는 낭도에 가서 바다 구경을 하고 맛난 점심을 먹었다. 오늘 길에 이쁜 카페가 있어 바다를 보면 여수에서의 마지막 차 한잔의 휴식을 즐겼다. 카페에 이어령 교수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10,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뿌듯한 마음으로 서울로 왔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같이 간 언니는 여수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었다며,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다음에 또 오라며 두 명씩 오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여행 중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면, 노상 방뇨하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어릴 때도 못 했던 행동을 나이 먹고 창피함도 없이 내 욕구부터 채우는 모습이 묘하게 신선했다. 이번 여행은 날씨까지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비가 멈추어주어 완벽하게 여행의 힐링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순간 들 즉, 아침의 캠핑카 앞에서의 경치, 언니의 콧소리, 사장님과의 대화, 모든 것이 귀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다음 달엔 S그룹에 같이 다닌 언니와 여수에 다시 가기로 했다. 그때도 나는 노상 방뇨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