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라 새벽 날씨가 시원했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어 비가 곧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과 내일 비 예보가 있다. 그래도 여수 여행을 위해 새벽이슬을 맞으며 약속 장소로 갔다.
며칠 전, 민희 언니가 "여수로 여행 가자"라고 제안했다.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교통편이 문제였다. 내 몸 상태로 5시간 운전하고 여수까지 가는 것은 무리였다. 언니는 자신이 운전하고 갈 수 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언니는 7월 20일부터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며, 묶은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했다. 일 시작 전 18~19일에 가자는 것이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번개 여행이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여자 두 명이 여수에 무작정 간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갑자기 생각난 사장님이 계셨다. 오랫동안 미국에 계시다가 말년은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오신 분이다. 얼마 전에 사장님은 캠핑카를 준비하셔서 전국 여행을 하시고 여수에 정착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장님께 여수 갔을 때 만날 수 있는지 카톡으로 여쭈어보았다. 흔쾌히 승낙하셨다. 캠핑카가 궁금했다. TV에서 나오는 캠핑카를 타고 가족 여행을 해보는 게 로망이었다.
여수로 출발하려고 시동을 거는 순간,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 지역에 따라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폭우가 창문을 내리쳤다. 언니는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운치 있고 좋다며 운전을 즐겼다.
여수에 도착할 때쯤 비가 어느 정도 멈추었다. 그때 나는,"앗싸! 여수 도착이다. 나를 위해 곧 비도 멈출 거고…. 우리 즐거운 여행 하자 언니야…."라고 신이 나서 말했다.
언니는 "비가 멈추어야 하는데…."라며 걱정스러운 듯 속삭였다.
"나만 믿어….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 비가 멈출 거야 크크크
내가 이리 푼수예요. 크크크"라며 언니에게 웃음을 주었다.
사장님 댁 근처에 주차하고 내리자 정말로 비가 멈추었다. 사장님은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가까운 파스타 전문점에 가서 점심 식사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식사하고 사장님은 우리를 주차장으로 데리고 가셨다. 드디어 기대했던 캠핑카를 보는 순간이다. 기대에 부푼 나는 캠핑카를 보는 순간 “사장님! 캠핑카가 왜 이렇게 작아요? 트럭 위에 있네요?”라며 실망의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사장님은 “이게 1~2인용 스텐다드야. 내가 더 커서 뭐하니?”라고 말씀하셨다.
TV나 여행 갔을 때, 세워져 있는 대형 캠핑카만 보았던 나는 이렇게 작은 캠핑카가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우리는 사용하지도 않을 캠핑카를 싣고, 트럭을 타고 여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언니 승용차로 여행하고 싶었지만, 사장님은 트럭이 편하시다면서 우리를 태우시고 구경시켜 주셨다.
우리가 향한 곳을 '향일암'이었다. 출발하면서 사장님께서는 어제 갔다 왔는데 향일암 가는 길목이 비탈이 심하고 한참 올라가야 한다며, 최대한 차로 올라가자고 하셨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화요일이고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라 올라가는 길의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다행히 차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주차를 위해 근처 카페에서 쌍화차와 팥빙수를 먹고 향일암으로 올라갔다.
향일암은 여수에서 가장 유명한 절이다. 역시 유명한 이유가 있었다. 향일암은 해안절벽 위에 자리하여 동쪽으로는 여수 항구와 순천만, 서쪽으로는 오동도와 넓은 여수바다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었다.
여수의 모든 아름다운 바다를 꼭대기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바위와 바위 사이의 동굴을 지나가는 느낌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기이한 길이였다. 비 온 뒤라 동굴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맞으면서 한 곳 한 곳 통과할 때마다 탄성이 나왔다. 특히, 일출과 일몰 시각에는 놀라운 경치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 시간에 없어서 보지는 못했다.
향일암을 내려와서 차에 타고 출발하는 순간 비가 오기 시작했다. 사장님 댁까지 오는데 엄청난 비가 왔다. 나는 차에서 또 한 번 마술을 걸었다. "역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나 봐? 내가 돌아다닐 때는 비 온 뒤라 시원하게 해주시고 차를 타니 다시 비가 오네. 아마 집에 도착해서 저녁 먹으러 움직일 때는 비가 또 멈출 거야?"라고 말했다.
사장님과 언니는 웃으시면서 비가 밤새 올 거 같다고 했다. 기상 예보도 새벽 2시까지 온다고 되어있었다. 나는 거기서 또 한 번 "아니에요…. 저를 위해 멈출 거예요. 크크크"라고 말했다.
역시나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 식당 예약 시간이 되어 움직이니 비가 멈추었다.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긍정적 마인드는 어디서나 통하는구나!'라는 생각했다.
오랜만의 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해 주었다. 긴 투병 생활로 지쳐있던 나에게 넓은 바다는 마음을 뻥 뚫어주었다. 작년 코로나 백신 이후 1년 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최고의 힐링을 즐기고 왔다. 모든 고민과 병을 여수 바다에 다 버리고 왔는데 어찌 될지…. 언니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분 전환이 되었다고 했다.
2023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