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다 보니 그동안 해왔던 일과 관련이 있는 법인의 사외이사가 되었다. 그 법인의 임원 워크숍이 있는 날이다.
시간에 맞춰 차를 타기로 약속한 곳으로 걸어간다. 휴대폰이 울려 받아보니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이다. 어디를 지나가고 있으니 몇 분쯤에 도착한단다. 시간을 확인하고 지금까지 걷던 속도보다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사람이 기다려야지 차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1~2분 후에 버스가 도착하여 차에 오른다.
담당하시는 분의 전화가 시간을 맞추는데 도움이 되었다. 고맙다는 생각과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고맙다는, 잘한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쑥스러워서.
목적지에 도착하여 강의를 듣는 시간이다. 친근감을 주려는 의도이려나? 빨간 나비넥타이를 맨 교수님이 강의를 한다. 강의 주제는 칭찬.
타인은 물론 자신에 대해서도 칭찬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내용의 강의를 꼼꼼히 준비했고, 또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중간중간 퀴즈를 내는 등 애를 많이 쓰신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수고했다는,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것도 쑥스러워서인가?
오래전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었다. 칭찬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술한 책이었는데, 그땐 강의를 하던 때라 강의에 활용하고자 그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을까? 칭찬을 하고자 하고, 칭찬을 듣고자 했던 게. 칭찬을 듣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일 테니 이미 가지고 있던 마음이었을 테고, 내가 듣고 싶은 만큼 남에게도 해줄 줄 알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게 그즈음 아닐까 싶다.
언젠가 한 번은 같이 근무했던 분이 대화에 등장하였기에 그분의 칭찬을 몇 마디 거들었는데, 한 달 뒤쯤인가? 우연히 그분을 만나게 되었고, 전해 들었다며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았고. 그러나
돌이켜 보면 타인에 대해서는 부러움이나 시기심, 질투심 등이 칭찬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더 무거워서 칭찬을 눌러버리기 일쑤였고, 아들, 딸에 대해서는 턱없이 높은 기대감이 칭찬의 높이보다 항상 높았으며, 아내에 대해서는 가깝다는 이유로 칭찬의 입을 닫고 살아왔다.
자신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잘한 것에 대한 토닥임보다는 잘 못한 일에 대한 질책을 동력 삼아 살아왔고…
강의 후 식사자리다. 아침에 전화해준 분에게 두루뭉술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 “참 잘하시던데요.” 그분은 “아니에요.”하면서 웃음 짓는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건 아직 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사람을 웃게 하는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