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다녀온 아내의 장바구니 사이로 노란 봉우리가 보인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는가 보다 어쩌고 하면서 국화 화분 하나를 내려놓는다. 잘 사온 듯하다.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베란다의 중앙에 화분을 놓았다. 가을 햇살이 국화꽃을 피우는 것을 지켜볼 심산이다.
홀로 집에 남겨진 시간, 커피 한 잔을 마련하고 국화가 마주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전에 무드라고는 약에 쓸려도 없는 지인이, 꽃 선물 한 번 하지 않는다는 아내의 지청구에, 결혼기념일 날 국화꽃 한 다발을 사들고 갔다가, 장례식이냐며 더 큰 잔소리를 만났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피식 한 번 웃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생전의 아버지는 중년일 때부터 국화를 키웠었다. 허름한 시골 농가의 한편에 제법 많은 국화 화분이 있었는데, 주로 흰색과 노란색의 동그란 꽃이었고 가끔은 털북숭이처럼 생긴 꽃도 있었다.
꽃을 피우기 전에는 잎사귀가 쑥이랑 비슷하여 ‘저걸 뭐 하러 키우지?’ 싶다가, 가을이면 어김없이 피는 크고 작은 꽃송이를 스쳐 지나가며 ‘꽃은 예쁘네.’ 정도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랬던 국화꽃을 지금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아내 말처럼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 싶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던가? 교과서에 실렸던 ‘국화 옆에서’라는 시가 떠오른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첫 소절과,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는 구절이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다. 시험에 많이 출제됐었던가?
또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뜬금없이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이건 시험에 출제된 것도 아닌데…
가을의 국화꽃에 담긴 봄날의 소쩍새 울음을 듣는, 붉은 대추 한 알에 숨어있는 태풍과 천둥을 찾아내는 시인의 혜안이 놀랍고 부럽다.
또또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이제 이런저런 생각 없이 국화만 보며 멍 때리자고 마음먹는다. 멍 때리면 심신이 안정되고 머리가 맑아진다고 하지 않는가. ……멍 때리기도 쉽지 않다. 움직임이 없는 응시 대상이어서 그런 건가? 불멍(불을 보며 멍 때리는)과 비멍(비를 보며 멍)은 쉬웠는데…
불은 똑같은 모습인 듯한데 한 순간도 같은 모양일 때가 없다. 비 역시 마찬가지이다. 빗방울의 굵기가 다르고 떨어지는 위치도 그때 그때 다르다. 그래서 불멍이나 비멍을 하는가 보다. 그런데 가만, 국화가 움직임이 없었던가? 작은 꽃망울이 저렇게 활짝 피었는데, 보이는 움직임과 보이지 않는 움직임의 차이 일려나.
커피 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홀짝 마신다. 며칠 후면 국화꽃은 시들어 버릴 것이고, 뜬금없이 생각난 대추 한 알도 단맛을 머금으며 시들어갈 것이며, 가을은 깊어가다 그 뾰족한 끝으로 겨울의 문을 두들일 것이다.
……그리고 봄의 소쩍새는 또 울 테고, 여름날의 천둥도 또 찾아올 것이며, 또또 국화꽃이 피고, 또또 뜬금없이 대추 한 알이 생각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