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머신 위를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유산소 운동이라는 걸 하는 중이다. 그런데 오른쪽 발가락 사이가 살짝 불편하다. 뭔가가 비집고 나왔을 때의 이물감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걸음을 못 걸을 정도는 아닌 아주 경미한.
집으로 돌아와 발가락 사이를 살펴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물감이 느껴지는 곳을 만져본다. 조금 딱딱한 게 만져진다. 티눈이다. 10여 년 전에 병원을 찾아 제거한 그 자리에 티눈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겁도 없이 쯔~~~.
세상의 모든 것이 자라듯 얘도 슬금슬금 자란다. 슬금슬금 자란 만큼 슬금슬금 더 불편해진다. 몸 면적의 몇 천분의 일, 몇 만 분의 일 정도의 작은 크기일 텐데, 이렇게 불편을 주나 싶다.
존재가 느껴질 땐 병원을 찾아 빼야겠다고 마음먹지만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으면 잊어버린다.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마주하면 불편하고 보이지 않으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티눈같이 경미하게 불편한 사람처럼.
세상에는 보석 같은 사람이 있다. 우리가 속한 지역이나 국가를 잘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이기를 만들어 내는 과학자나 개발자, 배우나 가수처럼 연예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등. 그러나
이처럼 환한 빛을 내진 않지만, 서로서로에게 보석만큼은 아닐지라도 보약 같이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내가 기쁠 때 기쁨을 함께하고 축하를 아끼지 않는 사람, 내가 슬프고 힘들 때 그 아픔을 나누어 주고 위로를 해주는 사람, 항상 편안하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 말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듯이, 좋은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나쁜 사람도 있다. 살인자, 강도, 도둑, 사기꾼 등 사회에 크나큰 해악을 끼치는 암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그러나 불편한 티눈 같은 사람들도 있다.
잘 되어도 신발끈이고, 못 되어도 게시판을 찾는 매사가 불만인 툴툴거리는 사람,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타인의 실수에는 지나치게 엄격한 사람,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타인의 의견이 채택되면 수수방관하고,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면 지나치게 적극적인 사람, 불만을 삭이지 못하고 신발 신발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젊었을 때는 없었던 티눈이나 잡티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하나씩 슬그머니 자리 잡는다. 많은 시간을 달려와 어느새 적지 않은 나이이다. 어쩌면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내 마음에도 나만 생각하는, 다른 이에게 관대하지 못하는, 나이만큼 많은 아집이라는 티눈이 생겨있는지도 모른다.
티눈처럼 불편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정작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티눈처럼 불편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나는 누군가에게 보약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티눈 같은 사람일까? 정답이 있을 리 없다. 누군가에겐 보약일 테고 누군가에겐 티눈일 수도 있으니. 그러나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에게 보약이 되고, 될 수 있으면 최소한의 사람에게 티눈이 되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 싶다.
발가락 사이에 있는 티눈을 다시 한번 만져본다. 얘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심스럽게 자랄 것이다. 불편함도 조심스럽게 커져 갈 것이고, 그러다 언젠간 병원을 찾아 뿌리를 뽑아내겠지 쓸데없이 단호하게.
그런데 마음의 티눈은 누가 뽑아내 주지? 병원에서도 어쩌지 못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