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전원을 켠다. 또 그 사람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선 하느님과 거의 동격이라고 유느님이라는 별명까지 있는 사람.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본다. 화면이 몇 번 바뀌자 또 나온다. 참 오래도록 방송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눈알을 굴리는 것으로 이름을 알리더니, 버럭버럭 고함지르는 콘셉트로 60세가 넘게까지 인기를 누리는 분도 있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90이 넘은 나이에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여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오르신 분도 있으니 오래 하는 것도 아니다.
오래 하는 분이 예능 진행자만 있는 게 아니다. 근엄하고 엄격한 한국의 아버지 역을 도맡아 하던 분이, 어느 날 시트콤에 출현하여 야동을 보는 역할도 불사하더니 8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고, 젊었을 때는 식모 역할만 줄곧 하셨는데 세월이 이분의 얼굴만 비켜 가서 아주 예쁘게 늙어 가더니 최근엔 할머니 역할을 도맡아 하는 배우도 있다.
오래 하는 가수도 있다. 어쩌다, 진짜 어쩌다 TV에 한 번 나오면 늘 TV에 나오는 가수들보다 더 화제가 되는 분. 느끼함 때문에 싫어했는데 본의 아니게 콘서트에 한번 갔다가 팬이 되어버린. 나이가 들면서 장난기가 늘었는지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분을 테스형이라 부르는 가수가 그분이다.
어떤 분은 잠시 스쳐 가듯이 잊혀 버리고, 한동안 열심히 활동하던 분들도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스러져가는 게 연예계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해 먹는(?) 분들은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어서일까?
우선은 실력이 아닐까 싶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하고,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하며, MC는 출연자를 편하게 하는, 물 흐르는 듯한 매끄러운 진행을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 이건 뭐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성실함도 장착해야 한다. 조금 떴다고 나대다가 사라지는 무수한 얼치기 스타들을 보면 말이다. 오래 하는 분들 무척 성실하다. 이상한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건 변한다는 얘기다.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일반 대중의 마음을 오래도록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며, 어쩌면 변화를 주도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2,500년 전의 테스형을 소환하는 그런 거.
무엇보다도 나이를 잊고 사는 것이 오래 하는 가장 큰 이유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세상을 등지지 않고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젊은이들이 가진 열정으로 새로운 배역, 새로운 음악, 새로운 콘셉트의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말이다.
TV 속이 아닌 우리 주변에도 오래도록 자기 일을 하는 분들이 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거나. 개인 사업을 오래도록 영위하거나, 봉사 활동을 오래 하거나 하는 그런 분 들. 그분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TV 속의 그분들과 별반 다른 게 없다. 자기 일을 누구보다 잘하고, 성실하며, 변화에 적응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분들이 그런 분이니까.
가끔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오래 하는 분들을 폄하하는 분들이 있다. 제발 그러지 말자. 오래 하는 분은 오래 하는 이유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서클이 있다. 참석할 때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가장 웃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다. 그때마다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고 덕담을 아끼지 않는데, 연세가 97세 인지 98세 인지는 살짝 헷갈리지만 어쨌든 아직 100세가 되지 않은 건 확실하다.
이 어른이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다. 긍정적이고, 성실하며, 세상 뒤에 숨지 않고 젊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무엇보다도 즐길 줄 아는 인생을 살아가신다.
세상 모든 일은 인과관계라는 게 있다.
오래 사는 분은, 당연히 오래 사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