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위층이 어째 지나치게 조용하다. 보통은 쿵쾅거리기도 하고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가족들 모두 외출을 간 건가? 너무 조용하니 오히려 불안하다. 그리고 무슨 소리가 들리길 기다린다. 그런 모습이 어이없어 픽하고 한번 웃는다.
오래전에 한방을 쓰던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뭐라고 대화를 나누다가 “인제 그만 잡시다.”라고 얘기하는 순간 잠이 들어 버린다. 그러고는 코를 고는데, 그 소리가 요란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도 아니어서, 살짝 예민한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코를 골았다 쉬다가를 반복하였는데, 코 고는 소리가 멎으면 그 틈에 잠을 청해야 할 텐데, 웃기게도 언제 다시 코를 골까 걱정하며 기다리곤 했었다. 불안함을 안고서 말이다. 지금이 그 형국이다.
언젠가부터 위층의 소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종종걸음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라고 짐작한다. 조금 시끄럽긴 했어도 아이들이 도도도 뛰는 소리, 젊은 아빠가 애들과 놀아주느라 나는 즐거운 비명과 웃음소리 같은 착한 소음이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문제는 소음의 시간대였다.
밤 9시 전까지야 라디오를 켜놓거나, TV 시청을 하거나 해서 웬만한 소음은 묻혀버리는데, 가끔은 잠자리에 든 후에도 소음 때문에 잠을 깨기도 했으니,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번은 얘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느 날,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젊은 부부와 꼬마애가 뒤따라 탄다. 우리 집 층수를 누르니 이어서 위층을 누른다. 아! 이 사람들이 착한 소음유발자들이구나 싶다. 그래서 꼬마에게 웃으며 말을 건다.
“네가 내 방 위에서 쿵쾅 이는 녀석이구나.” 그랬더니 아이는 엄마 뒤로 슬그머니 몸을 숨기고, 젊은 부부는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며 황급히 사과한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밤늦게는 조금 조용히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생각하고 있던 말은 이것이었다. 그런데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괜찮습니다. 아이 키우는 집이 다 그렇죠. 뭐”였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괜찮은 이웃이 되어 버렸다.
며칠이 지났다. 명절을 앞둔 날이다.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위층의 젊은 부부가 자그마한 포도 상자를 들고 서 있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이해해 줘서 고맙다면서 명절 잘 보내란다. ‘뭘 또 이런 걸’인데, 큰일 났다. 이제 아무 말도 못 하게 생겼다.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호의라도 받으면 그걸 되갚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주부가 여기에 해당할 텐데, 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아내다. 위층에서 포도를 줬으니 우리도 뭔가를 줘야 한단다. 기어이 빵집에서 이것저것을 골라 전달하고서야 마음을 내려놓는다. 훈훈하다.
착한 소음은 지속된다. 훈훈함도 시끄러움은 막지 못한다. 아내도 늦은 밤의 소음은 거슬리나 보다. 언제 만나게 되면 얘기할 거란다. 일단은 아내를 믿어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또 명절을 며칠 앞둔 날이다. 무슨 향이라는 이름이 붙은 밀감을 내온다. 웬 거냐니까 위층에서 또 다녀갔단 다. 밤늦게는 조용히 해달라고 얘기를 했냐고 물어본다. 씩 웃는다.
“괜찮아요. 애 키우는 집이 다 그렇죠. 뭐”라고 했단 다. 아내도 괜찮은 이웃을 선택했나 보다.
이제 방법을 바꾸자. 일단은 착한 소음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윗집 아이가 빨리 자라서 뛰지 않을 때를 기다리자. 착한 소음이라도 시끄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본의 아니게 괜찮은 이웃이 된 것에 만족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