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책상과 책장이 드디어 도착한단다. 기다린 지 2주일 만이다. 2주일?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지방에 사는 설움이지 뭐.
지금껏 사용했던 책상과 책장은 – 과연 사용이라는 걸 하긴 했던가? - 아들내미가 초등학교 다닐 때 들여놓은 살짝은 유아틱 한 느낌이 나는 것이었다. 애들이 집을 떠나 버린 후 별로 사용할 일도 없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유물처럼 방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던 거다. 심지어 창문까지 반쯤 가리고서 말이다.
책을 뒤적거리거나 뭔가를 끄적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책상의 사용 빈도가 조금씩 늘어났는데, 이 게 사용하기가 엄청 불편한 거다. 그러다 보니 책상보단 식탁이나 앉은뱅이 탁자를 더 자주 사용하게 되고…
그래서 책상을 바꾸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아들, 딸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왕 바꿀 거 튼튼하고 괜찮은 걸로 하란다. 동감이다. 각자의 스마트 폰을 뒤적인 끝에 결정한 것은 절대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이 생긴 원목 책상과 책장. 게다가 곧 생일이니 선물을 그걸로 대하겠단다. 기쁜 마음으로 땡큐.
주문을 했단다. 그런데 2주일을 기다리란다. 지역별로 배송하는 주기가 있다는 거다. 배송이 오래 걸린다 싶었지만, 그동안 기존 책상과 책장을 치우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에 돌입했는데, 이게, 이게 쉽지 않다. 내려앉은 먼지를 머금고 유물처럼 꽂혀 있는 책장의 책들의 처리가 문제였으니…
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살릴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해야 하니 말이다. 왜 옷이나 사용하던 물건을 버리려고 하면 꼭 다음에 입을 것 같고, 다음에 또 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책이 그렇다. 버리려고 골라내면 다음에 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살리는 쪽으로 옮기고, 의미 있는 책이라 살리고, 오래된 책이라 아까워서 살리고, 그렇게 살리고, 살리고.
생각을 미래 지향형에서 과거 경험형으로 바꾼다. 앞으로 저 책을 다시 볼 것인가? 에서, 지나간 날 저 책을 다시 손에 잡은 적이 있었던가?로. 그랬더니 버릴 책이 수두룩하다. 보지도 않을 책을 뭐 하러 이렇게 가지고 있었나 싶다. 욕심스럽게 시리. 아니 욕심이라기보다는 굳은 생각 때문이겠지 책은 버리면 안 된다는 살짝은 케케묵은 생각.
쇼핑용 손수레에 버릴 책을 주섬주섬 담아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도착한 책상을 원하는 자리에 놓고, 노트북을 올려놓고, 필기구를 비치하고, 서랍에 넣을 물건들을 정리한다.
다음은 책장이다. 노트는 노트대로 착착 꽂고, 책은 키 큰 녀석부터 작은 순서대로 정리하여 꽂는다. 기분 좋은 작업이다. 그런데, 어라! 책을 너무 많이 버렸나? 책장이 남아돈다. 큰일 났다. 이렇게 공간이 비어 있는 거 못 보고 있는 성격인데.
아내는 좋단다. 꽉 차지 않고 조금은 비어 있는 거. 여백의 미! 그런 거란다. 일단은 수긍한다. 저 정도 공간 채우는 거야 언제든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니. 조만간 보고 싶었던 책들로 채워버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정리를 마친다.
차 한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본다. 은은한 나무의 향기가 좋다. 아늑하다. 물끄러미 책장을 본다.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이제는 책들이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하는 시대가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한다. 책장 옆에 있는 LP나 CD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음원이 대세인 시대에 저렇게 자리를 차지할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기꺼이 책이나 LP에 자리를 내어주고, 심지어 비어 있는 작은 공간도 채우려고 하는 것은 무슨 마음인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겠지 싶다. 흔히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불리는, 시대에 살짝 떨어지는 그러나 따뜻한 감성, 좋아하는 물건들 사이에 있을 때의 평온함과 만족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활자와 음원보다는 손길이 닿는 곳에 있는 활자나 음원의 친근감, 그런 것들로 채워진 공간을 좋아하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니 말이다.
또 쓸데없는 생각을 했었나?
머리를 한번 흔들곤 찻잔을 들고 일어선다. 책상이 놓인 공간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