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체 들지 않는 마음이 동한다. 산에 오르고 싶다는. 그렇다고 몇 시간씩 걸리는 높은 산은 엄두가 나질 않고… 그래서 두유(반려견)와 함께 또 그곳을 찾는다. 추화산.
도시 인근에 있는 산들이 다 그렇듯 추화산은 그렇게 높지 않고, 또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많이 나 있는 산이다. 오늘은 산 아래 위치한 공원을 가로질러 올라가는 길을 택한다.
공원을 벗어나 산길로 들어서니 부드럽고 폭신한 느낌이 발바닥에 와닿는다. 그 옛날의 볏짚으로 만든 덕석은 아니지만, 먼지 날림을 방지하고 질퍽거림을 방지하는 야자 매트가 깔린 완만한 경사의 편안한 길이다. 소나무들과 그 소나무에서 떨어진 솔잎과 솔방울을 눈에 담으며 설렁설렁 걷는다. 편안한 길만큼 걷기도 편안하다. 그러나 산길이 편안하기만 하겠는가? 곧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마주한다.
슬슬 가빠지던 호흡이 격한 숨결이 된다. 그동안 산행을 너무 안 했었나? 쉴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언젠가 TV에서 본 숨 가쁘지 않게 오르막길을 오르는 방법을 떠올린다. 호흡이 빨라지는 만큼 발걸음을 천천히 하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호흡이 가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산길을 가라는 거다. 그렇게 해도 산봉우리에 도착하는 시간은, '빨리빨리'를 외치며 서둔 사람들과 같거나 오히려 빠르단다. 발걸음을 늦추어 본다. 한결 수월하다.
한창 등산을 다닐 때 그랬던 것 같다. 마치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처럼 천천히 또박또박 쉬지 않고 산길을 줄여나가면, 빠른 걸음으로 가다가 가쁜 호흡을 달래려 쉬고 있는 사람들을 앞지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동화 ‘토끼와 거북이’가 떠올랐고, 세상 모든 이치가 동화 속에 있구나라는 생각도 같이 떠오르곤 했다.
어느덧 경사길이 끝나고 두 갈래 길과 만난다. 한쪽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비교적 넓은 길이고, 한쪽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없는 좁은 오솔길이다. 오솔길을 좋아하므로 오솔길을 택한다. 소나무 사이로 난 외길이 호젓하니 좋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이 있어 인사하며 몸을 비켜 지나간다. 오솔길을 걷는 재미 중 하나이다.
오솔길이 끝나고 이제 능선길에 접어든다. 마지막 오르막인 이 능선길도 에베레스트 등반 발걸음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뗀다. 앙증맞게 작은 나무다리를 만난다. 정상이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산성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 지킴의 목적, 방어의 목적이었을 성터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언젠가 새해 첫날 이곳에서 맞았던 일출을 떠올리며 해가 뜨는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 발길을 봉수대 쪽으로 돌린다. 올곧게 서 있는 봉수대와 그 뒤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조화롭다. 침범이나 환란 같은 위급함을 알리던 봉수대 역시 지금은 평화롭기만 하다.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소중한 사람들이 ‘추화산성 보존회’를 유지하면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이곳에서 봉수제를 지낸다고 한다. 풍물놀이로 흥을 돋우고, 달집 태우기로 소원을 빌며, 제를 올리면서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고, 음식을 나누는 좋은 행사이다. 누군가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선의를 베풀면 그 선의를 받아들이는 것도 선의일 것이다. 그래서 올해 보름에는 이곳을 찾아볼까 싶다.
이제는 하산길이다. 습관적으로 올라온 길과 반대쪽에 있는 길을 택한다. 얼마간 내려가니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휴식 공간이 나온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국민의 체력을 위한 체육시설 등의 사회간접자본을 갖출 수 있는 능력이 국력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하산 후의 기분 좋은 피곤함을 안고 차에 오른다. 내가 사는 동네에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추화산 같은 산이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사는 이곳이 최고가 될 수도 있지 않으려나?라는 생각도 같이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