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맛있는 라면은 어떤 라면일까? 조리법 때문에 가장 맛있는 라면이 되진 않을 테고, 라면의 종류 때문에 결정되는 것도 아닐 게다. 누구나 그렇듯 어떤 시간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과 함께 먹었느냐에 따라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커다란 양은 냄비에다 네댓 개의 라면을 끓인 다음 책 한 권을 받침대로 놓고 – 읽는 것보다 더 유용한 거? - 냄비를 올려놓는다.
둘러앉은 젓가락들이 바삐 움직인다. 저마다의 그릇에 라면 면발을 담아서 후루룩 마시듯이 가능한 한 빨리 흡입한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라면의 면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국물만 남는다. 친구들과 함께 참 많이도 했던 맛있는 라면 흡입기이다.
이 냄비째 라면은 지금도 야외에서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할 때면 코스요리의 마지막으로 종종 등장하며, 그때의 그 맛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라면의 맛이라기보다는 사람의 맛일 테니.
군대에서의 라면도 잊기 힘든 기억이다. 일주일에 한 번, 휴일 점심으로 먹은 것 같은데, 면발에 먹혀버린 국물과 그 국물을 머금은 팅팅 불어 터진 라면은… 당연히 맛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대 울타리에 인접한 허름한 초가집과 부대원을 상대로 라면 영업을 시작하신 할머니가 있었으니, 살금살금 걸어가서 “할머니, 라면 두 개요”라고 주문하면 잠시 후 먹을 수 있었던 그 꼬들꼬들한 라면의 맛은,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거 국가기밀인가? 그럴 리가.
산에서 화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정상에 오른 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석유 버너를 준비한다. 알코올로 예열한 후 펌프질을 하여 공기 반, 석유 반으로 분사하면,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불이 지펴진다. 그 불에 끓인 라면은 힘든 등산 후의 허기짐과 내려다보이는 풍경의 시너지 효과로 항상 엄청나게 맛있음을 선사했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서 화기 사용이 금지된 후에도 컵라면과 끓인 물을 보온병에 담아 산에 오르곤 했는데, 어느 추운 겨울날 산에서 먹는 회 맛이 일품이라는 시근 없는 생각으로 회를 준비하여 덕유산에 올랐다.
사방은 온통 하얗고 겨울나무들은 화려한 눈꽃을 피우고 있는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으나,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모질게 추웠으니 회고 뭐고 다 뒷전으로 밀려나고 컵라면 한 그릇이 모든 걸 평정하였다.
덕유산의 추위를 잊어버릴 만큼 세월이 흐른 후에, 한라산에 올라 줄을 서서 배급받듯이 사 먹었던 컵라면도 인생의 맛이니, 산에서의 라면은 라면 맛이 아니라 산이 주는 산의 맛이요, 추위가 주는 추위의 맛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덧 그릇의 바닥이 보인다. 이제 면발은 보이지 않고 미리 넣어 둔 식은 밥만 남았다. 숟가락으로 라면 국물에 밥을 만다. 식은 밥의 전분이 우러나와 국물은 조금 걸쭉해지고 밥은 꼬들꼬들해져 있다. 역시 라면엔 식은 밥이 정답이다. 밥을 훌훌 떠먹고는 남은 국물을 그릇 채 들이킨다. 식사 끝.
국민(초등)학교 때 처음 접하고 ‘세상에 이런 맛이?’라고 생각했던 라면과의 만남이 어언 반세기이다.
지극히 자의적인 생각이지만 내게 라면의 맛은 늙지 않음의, 혹은 철들지 않음의 기준이다. 언제까지 라면이 맛있는 상태가 유지될까?
라면 한 그릇에 드는 생각이다. 쓸데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