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그 집

by 김종열

방금 도착한 집은 넓어서 좋다. 서울에서 엄마(결혼하지 않은 아가씨인데, 자기 입으로 엄마라고 하니까 뭐…)랑 살던 집은 방 하나에 작은 화장실, 그리고 매우 작은 베란다가 전부여서 엄마가 출근하고 나면, 그 좁은 공간에서 몇 발자국 기웃거리거나 자는 게 하루 일과였다.


나는 심심했고, 심심하고, 심심할 거여서 엄마가 퇴근하면 좋아서 죽을 지경이었다. 흔드는 것에 인색한 꼬리를 흔들고, 폴짝폴짝 뛰고, 몸을 세워 앞발로 엄마의 바지를 긁는 등 온몸으로 반가움을 나타내면, 엄마도 “아이고 우리 두유(내 이름으로 털 색깔이 마시는 두유 색이랑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사람들은 이런 일차원적인 게 좋은가 보다. 초코라는 수많은 초콜릿색 아이들, 두부 또는 우유라는 이름의 수많은 흰색 아이들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잘 있었어?”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고, 간식도 주곤 했다. 그러나 그 행복한 시간은 피곤한 엄마에겐 지나치게 긴 것이었고, 심심했고, 심심하고, 심심할 예정인 나에게는 지나치게 짧은 것이어서, 엄마와의 이별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삼 개월 만에 형제자매와 헤어져 엄마에게 입양된 포메라니안이다. 대부분의 젊은, 또는 어린 아가씨들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애견인을 자처하며 우리를 입양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반려견과의 삶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그들의 부모에게 맡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나 역시 그런 대부분에 속하는 경우로, 엄마랑 산 지 딸랑 두 달 만에 이곳 할배, 할매(엄마의 아빠, 엄마니까 족보상 맞는 거?) 집으로 오게 된 거였다.


사람들은 가끔은 우리를 인형 같은 무생물처럼 대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도 좋음과 싫음,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이 있는데, 예고 없이 주거 공간을 바꾸거나, 예고 없이 주인을 바꿔 버리는 걸 보면 말이다.


엄마가 떠나고 난 후, 그 상실감에 슬픈 눈동자로 며칠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약이라더니 할배, 할매와도 친해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공간에도 조금씩 적응이 되어갔다. 나를 두고 떠난 엄마도 잊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려는 듯이 맛있는 간식과 영양제, 예쁜 옷, 싫긴 하지만 해야 하는 양치 약 등을 보내오곤 한다.


이 정도면 뭐 행복한 인생, 아니 견생 아닌가? 낯선 길에 버려진 수많은 강아지들도 있는데…


* 개세이(개+에세이, 개+say)는 반려견의 관점으로 쓴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