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격리생활

내 격리생활은 과연 슬기로웠을까?

by 김종열

코로나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니 검사를 받으라고 하고, 결과에 관계없이 격리 대상자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 잠시 동안은 멍했던 것 같다. 서둘러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까지는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신경이 몰려있어 2주 동안 해야 할 격리생활에 대해선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러나 기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격리기간을 보내기가 녹록지 않았으니…


눈을 뜬다. 첫날 아침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는다. 깨끗한 환경에서 격리생활을 하자는 것인데, 솔직히 시간을 좀 보내자는 의미가 더 크다. 시간이 남아돌면 청소도 재미있을 수 있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친다. 음성이라는 검사 결과를 문자로 통보받는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지 말자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한다. 덤벨을 들어 올리고, 스쿼드를 하고, 스피닝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땀이 흐르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시계를 보니 쯔, 아직 10시밖에 되지 않았다. 오전이 이렇게 길었던가?


가능한 천천히 커피를 마련하고, 가능한 천천히 마신다. 화분에 심긴 식물들 하나하나와 눈 맞춤하고, 눈을 들어 멀리 산 능선을 바라보기도 한다. 시간은 끈질기게도 천천히 흘러간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오전보다 긴 오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뾰족이 솟아오른다.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라는 말이 생각나서 피식 한 번 웃는다.


영화를 한 편 볼까, 음악을 들어 볼까. 어차피 바깥세상은 빼앗겨버렸고 가진 건 시간뿐이니 두 가지를 다 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없는 시간에 하면 그렇게 재미있던 이 일들이 시들하다. 재미가 없다.


공간을 옮겨본다. 거실에서 방으로, 열 발짝 쯤. 책을 읽어 볼 생각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잠을 참으면서 책을 읽는 사람과, 잠들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 여기에 새로운 형태의 책 읽기가 추가된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 예상했던 대로 이 또한 재미없다.


오래전 군 복무 때 속담처럼 쓰던 말이 생각난다.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거꾸로 매달린 것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또 먹는다. 저녁식사다. 이제 거대한 밤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댄다. 당최 진득해지질 않는다. TV 화면이 지겨워서 일찍 자자는 생각으로 자리에 눕는다. 당연히 심하게 이른 새벽에 눈을 뜬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된 것인데, 어쩌나 덕분에 둘째 날은 더 길어진 것 같으니.


딩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무지하게 반갑다. 아들이 보낸 구호식품(?)인 빵 봉투가 걸려있다. 조금 뒤 또 딩동 소리가 들린다. 딸이 보낸 아이스크림이 걸려있다. 격리생활 덕분에 느껴보는 뿌듯함이다. 오후에는 아내의 지인이 보낸 간식이 도착한다. 갇혀 있으니 사식 넣어 주는 거라는 농담과 함께. 나보다 아내가 훨씬 잘 살았나 보다.라는 생각이 스윽 든다. 그렇게 또 하루가 멀어져 간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자의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정확하게 맞는 말이지만, 타의에 의해서, 그것도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도무지 맞지 않는 말이다. 굉장히 긴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남은 기간을 어떻게 견디나 싶은데, 어라 어느새 숙달된 조교가 되어 버린 것일까? 이젠 견딜 만하다. 생전에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맞았다. ‘당하면 못 당할 일 없다.’는 말.


같은듯하지만 조금씩은 달랐던 하루하루가 지나서 어느 듯 격리기간도 끝이 났다. 어쩌면 인생도 같은 듯 다른 날들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고, 하고 싶은 거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소소한 일상이 행복한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격리기간 동안의 생활은 ‘산다.’라기보다는 끝나기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짧은 기다림이 더 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의 길이는 절대적이지만, 그 느낌은 상대적이니…


그리고

내 격리생활은 슬기로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