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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맛, 아는 맛

by 김종열

이렇게 저렇게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던가? 적당한 수다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 아닌가? 수다를 정당화하려는 내 생각인가? 어쨌든 오늘의 주제는 음식에 관한 것이다.


어디에 뭐가 맛있더라. 이렇게 하면 맛있더라, 저렇게 하면 맛있더라. 매운 게 맛있더라. 비싼 게 맛있더라. 이걸 좋아하네, 저걸 좋아하네. 하는 말들을 신나게 주고받는다. 그러다 한 분이 자기는 처음 접하는 맛보다는 아는 맛, 익숙한 맛이 편하고 좋단다. 그래서 식당도 가는 집만 가고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먹는단다. 얼핏 다 그런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처음 대한 음식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 아니 세상에 이런 맛이.라고 생각한 적이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라면이 그랬다. 기름기 머금은 꼬불꼬불한 면발과 식은 밥을 말았을 때의 살짝 걸쭉한 국물의 맛.


달짝지근한 짜장면과 얼큰한 짬뽕과의 처음도 그랬고, 다진 고기가 듬뿍 든 얇은 고기만두와의 처음도 기억에 남았다. 돈가스의 고소함도 피자와 햄버거와의 첫 만남도 강렬했고, 삶아서 먹는 건 줄 알았던 삼겹살을 구웠을 때와, 국으로만 먹는 것인 줄 알았던 소불고기의 처음 맛도 그랬다.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어 당황스러웠던 바다회와의 처음도, 생선을 삶아 먹는다고?라는 의문을 품었던 아귀 수육의 처음 맛도 그랬었다. 그리고


그 처음 맛은 이제 익숙하기 그지없는 아는 맛이 되었다. 라면만, 돈가스만 그런 걸까? 놉, 그럴 리가 없다. 처음 맛이 강렬하지 않아서 기억에는 남지 않았지만 지금 먹고 있는 모든 음식도 첫 경험이 있었고 비로소 아는 맛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 맛이 있었으니 아는 맛이 되었다는 얘기다.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치자. 처음 맛을 쫓는 사람과 아는 맛을 탐하는 사람. 어떻게 많고 많은 사람을 두 종류로만 나눌 수가 있겠는가? 하도 우리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리고, 또 흔히들 농담처럼 그렇게 양분하고들 하니 농담인 듯 진담처럼 그렇게 해보자는 거다. 그러면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향도 그렇게 나눌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추구하는 사람과 자신이 잘하는 익숙한 일만 하려는 사람. 새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아는 사람만 만나려는 낯 가리는 사람. 안 가본 곳을 찾는 모험심이 넘치는 사람과 가본 곳 그래서 익숙한 편한 곳만 가려고 하는 사람 등으로.


아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식의 깊은 맛을 알 테고, 익숙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에 능숙할 것이고 일의 미세한 차이를 알 테고, 아는 사람만 만나는 사람은 짙고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람일 테고, 아는 곳을 즐겨 찾는 사람은 좋아하는 그곳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즐길 줄 알 것이다. 반면에

처음 맛을 쫓는 사람은 새로운 맛을 찾아 알리거나 만들 수도 있을 테고,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은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들어내거나 문화를 창출하는 변화와 혁신을 이루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기는 사람은 대인 관계의 폭이 넓을 테고, 새로운 곳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험심이 충만한 사람일 것이다.

어떤 성향이 옳은 것일까? 답이 있을 리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그 새로움이 익숙함이 되어 버무려지고를 반복하며 발전해 나간다. 마치 처음 맛이 아는 맛이 되는 것처럼. 그러니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을 틀렸다고 하지 말자. 다름을 인정하자는 얘기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짜장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짬뽕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둘 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둘 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파울 클레-오래된 사랑 노래.jpg 파울 클레-오래된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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