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의 파괴

by 김종열

영화를 한 편 볼까?라는 생각이 쓰윽 든다. 편리하고 좋은 세상 아닌가? 언제든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화면을 뒤적뒤적하다가 음악을 소재로 한 ‘마지막 4중주’라는 작품을 고른다.

세계적인 현악4중주단의 리더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4명의 단원이 숨기고 억누른 갈등이 표면화된다. 그런 갈등 속에서 불협화음의 위험을 안고 마지막 연주를 한다는 내용이다. 감상 후 여운이 남을 때 가끔 한 줄 감상평을 적어보기도 하는데, 이 영화의 한 줄은 ‘누군가가 질서를 깨면서 갈등은 시작되는 거지.’이다.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인지 평소 그런 생각을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사람 사이의 시기와 질투,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는 건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질서를 누군가 파괴하면서 시작되는 것 같다.


친구 간의 갈등도 어느 한쪽이 믿음이라는 질서를 깨뜨릴 때 시작되고, 부부 사이에도 소소한 질서의 파괴는 작은 갈등의 씨앗이 되고 불륜을 저지르는 등 큰 질서의 파괴는 엄청난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뿐인가 회사든 지방자치단체건 정부 부처건 어떤 조직 내부의 갈등도 부서 간의 균형이 무너질 때 시작된다. 부처이기주의가 발동하면 그렇게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엄청나고 잔혹한 갈등도 국가 간에 유지되던 질서가 무너지면 발생한다.


갈등을 안고 사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그래서인가 갈등이 발생하면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그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낸다. 한쪽이 양보하든, 양쪽이 타협안을 찾아내든, 누군가가 중재하든, 극단적으로 관계를 단절하든,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고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거다. 그 새로운 질서도 또다시 누군가에 의해 파괴될 테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사라는 게 질서가 파괴되고 갈등이 일어나고 갈등을 봉합하고 다시 질서를 유지하고 하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갈등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사람은 성공하는 삶을 살 테고, 갈등을 갈등으로만 받아 더 키워가는 사람은 실패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갈등을 피하지 말고 잘 다스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게 현명한 삶의 태도 아니겠나 싶다.


우리 삶에서 완벽하게 질서가 유지되는 순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산다는 건, 살아 있다는 건 갈등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삶의 불협화음을 피하지 말고 불협화음의 위험을 안고 내 삶을, 우리의 삶을 연주해 보자. 영화 ‘마지막 4중주’가 불협화음의 위험을 안고 마지막 연주를 하듯이. 그리고


때론 불협화음도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도 있으니.


피카소-앉아 있는 여인.jpg 피카소-앉아 있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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