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운동을 하다가 맞이한 간식시간이다. 이런저런 군것질거리와 음료수를 마시며 이런저런 농담을 나누며 체력을 보충한다. 그런데 한 분이 유독 단 것에 자주 손을 뻗는다. 곁에서 지켜보던 그분 부인이 당뇨가 있으니 단것을 많이 먹지 말라고 한다. 그런가? 싶어 검색해 본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 단 음식을 먹었을 때 정상인보다 혈당이 빨리, 그리고 많이 올라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단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이 걸작이다. 해롭긴 하지만 다른 이로운 성분도 있으므로 먹어도 된단다. 헐! 그 엉성한 자기기만 또는 자기 합리화에 피식 웃는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거다. 나는 저런 적이 없었나라는 생각. ………. 그럴 리가 없다. 나를 속이고 합리화한 적이 있다는 거다. 그것도 종종.
나 역시 해롭다는 음식 앞에서 그랬다. 오늘만 먹을 거니깐 괜찮다고, 많이 먹지 않을 거니까 문제 될 게 없다고, 맛있게 먹으면 해롭지 않다고 그렇게 엉성한 논리로 나를 속였다. 뿐인가
지금은 피우지 않지만, 담배와 친하게 지낼 때 그랬다. 누군가가 몸에 좋지 않은 걸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왜 피우냐고 금연을 권하면, 식후에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소화가 되질 않는다느니, 화나는 일이 있을 때 분노를 가라앉혀 준다느니, 글을 쓸 때 꼭 필요하다느니, 정신건강에 좋다느니 하는 등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담배가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끊지 못한 술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신문을 뒤적이다가 술이 일급 발암물질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단 한 잔의 술도 해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해로운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적당한 양은 약이 된다고 그래서 약술이라는 말도 있는 거라고,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데에는 술만 한 게 없다고 그래서 사회생활에는 꼭 필요한 거라고, 마시면 즐겁고 신난다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풀리니 오히려 더 좋은 거라고, 자기기만을 넘어 자기 최면을 걸고 술자리에 앉는다.
술과 담배만 나를 속였을까? 이 또한 그럴 리 없다. 해야 함에도 하기 싫은 일을 피하면서 내가 할 일이 아니라며 나를 기만하기도 했고, 불의를 보고 눈 감으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내 행동을 합리화하기도 했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면서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을 속이기도 했으며, 합리적이지 않거나 정당하지 않은 일 또는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라는 편리한 변명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을 속이는 게 가장 쉬울 수도 있다. 상대가 없으니 속여도 들통날 일이 없고, 자신을 속이니 다른 사람들은 그 속임수를 모를 테고, 설사 알더라도 모른척해 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혹은 모르는 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앞으로도 그러면서 살아갈 것이다. 사소하고, 엉성하고, 비겁하고, 옹색한 논리로 자기를 기만하면서.
타인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 가장 엄격한 사람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속이지 않는 것보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가장 정직한 사람일 것이다. ……….
나는 나를 속이며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