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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1)

by 김종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읊조리듯 노래하는 곡을 듣는다. 평소 즐기지 않는 장르의 음악이다. 대부분 귀를 꽉 채우는 Rock이나 웅장한 교향곡을 자주 골랐으니. 그런데 비어있는 듯한 이 음악도 괜찮다. 오늘이 그런 감성의 날인가? 그래! 때로는 그랬다. 서너 개의 악기로 연주하는 채워지지 않은 느낌의 음악이 좋기도 했다.

5년 넘게 사용한 스마트폰을 드디어 바꾼다. 배터리 소모는 빨라지고 성능은 느려지니. 새 핸드폰으로 유심칩을 옮기고 데이터를 옮겨 넣는 작업을 한다. 오래 걸린다. 그래서 옮긴 데이터를 확인해 본다. 가장 많은 게 음악파일이다. 이걸 듣기나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챙겨보았더니 듣는 곡보다 듣지 않는 곡이 더 많다. 쓸데없이 부둥켜안고 있는 거다. 과감 무쌍하게 삭제 작업에 돌입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폰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비운다는 건 가벼워지는 것인가 날렵해지는 것인가.


베란다를 차지하고 있는 화분들을 정리하잔다. 너무 빼곡히 놓여 있단다. 가득 채워진 이런 느낌 좋은데 왜?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야 더 소중하고 좋아 보인단다. 제법 많은 화분을 덜어낸다. 괜찮다. 깔끔하다. 허전할 줄 알았는데….


언젠가 책상과 책장을 새로 들여놓으면서 유물처럼 끌어안고 있던 책들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읽겠지 하면서 오래 간직한 터라 주저주저하며 버렸었다. 그때도 그랬다. 어! 깔끔하네. 그리고 지금도 비어있는 책장의 공간은 책이 꽂힌 공간보다 더 눈길이 간다. 이상하게도.

언제, 어디서였나? 하얀 벽 한 면에 딸랑 자그마한 정물화 한 점만 걸려있는 공간을 본 것이. 그때도 그랬었다. 비어있어도, 채워지지 않아도 좋구나! 했다.


아침엔 이걸 하고, 오전엔 저걸 하고, 오후에는 그걸 하고, 저녁에는 또 무얼 하고, 하루를 빈 시간 하나 없이 빼곡히 채운다.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헛헛한 인생이 되지 않으려고. 그러다 때로는 빈 시간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땐 멍때리거나. 빈둥거리거나, 얼쩡거리거나, 목적 없이 걷거나 하는 등으로 느리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헛된 걸까? 아까운 시간일까? 어쩌면 그럴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지 않을까? 비어있어서, 비어있기에.


짧은 시를 쓰는 사람이 있다. 픽 웃을 때도 있고, 아! 하고 공감할 때도 있고, 아하! 하고 감탄할 때도 있다. 그렇다. 때로는 지면을 가득 채운 글귀보다 한 줄 글귀가 더 와닿기도 한다. 영화 감상평도 그렇다. 때로는 딱 한 줄 감상평이 눈길을 끌어 영화를 선택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때로는 비움이 채움보다 나을 때도 있다.


고흐-반 고흐의 의자.jpg 고흐-반 고흐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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