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다행으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승진시험이라는 게 있었다. 채용할 때 이미 시험을 치렀는데, 승진도 업무능력이나 조직에의 기여도 같은 걸로 하지 않고 시험의 성적순으로 한다는 게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가치관이 있었을 터이니. 아무튼
승진시험 준비를 할 때의 일이다. 직장에서의 공부라는 게 학교 다닐 때처럼 선생님께 배우는 게 아니라 혼자 해야 하는 공부이니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특히 암기과목이 아닌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과목이 문제였다. 대부분 몇 차례 반복해서 읽으면 이해되었으나 딱 한 문제가 당최 이해되지 않는 거였다. 에이! 이 건 포기해 버릴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의지의 한국인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책상에 앉을 때마다 제일 먼저 그 문제를 읽고는 다른 공부를 하곤 했는데, 어라! 어느 날 갑자기 아하! 이런 것이었구나 싶은 것이었다. 깨쳤다고 해야 하나?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뭐가 됐건 처음 느껴보는 희열이었다. 공부와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학교 다닐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기분.
세월이 흘러 이제 취미로 즐길 운동을 배운다. 기구는 이렇게 잡고 팔은 저렇게 움직이고 하체는 요렇게 하고 시선은 조렇게 하란다.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 한다. 잘 된다. 별거 아니구나 싶다. 자만심이 이끄는 대로 일찌감치 레슨을 그만둔다. 그리곤 내 생각대로 열심히 연습한다. 당연히 기본원리에 대한 이해나 개념 같은 건 없다. 이상도 하지! 아니, 당연한 일이지! 연습하면 할수록 더 안되니 말이다. 반성 모드로 들어간다.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을 뒤적이니 설명을 잘해주는 선생님이 한둘이 아니다. 차분하게 선별하여 차분하게 학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조렇게 하라던 첫 레슨 선생님의 말씀이 이래서 저래서 요래서 조래서 그렇구나! 하게 된다. 드디어 개념 정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운동 실력이 좋으냐고? 그럴 리가. 그건 별개의 문제이다.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그러나 적어도 흐트러지고 망가지진 않는다. 깨달았으므로.
모든 게 그런 것 같다. 공부든 운동이든 일이든 배우는 것 보다 깨닫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왜 아니겠는가? 수업만 들은 학생보다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반복 학습하여 이해한 학생이 당연히 좋은 성적을 낼 테고, 무작정 뛰어다니는 선수보단 전술과 전략을 이해하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가 이길 것이고, 가르쳐 준 일만 또박또박하는 사람보단 업무의 목적을 이해하고 내용을 파악하여 합리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인재일 것이니. 그런데
배우는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무얼 하자고 하면 아직 안 배웠다는 사람. 또는 배웠는데 잊어버렸다는 사람. 이건 뭐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만 대답하는 청문회 증인 같다. 왜 그럴까? 배우기만 하고, 배운다는 행위에만 의미를 두고 제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부족해서는 아닐까? 1시간 배우면 10시간 이상 익혀서 깨달아야 하는데 말이다.
배우기만 한 것은 쉽게 잊혀버린다. 반대로 머리가 지나치게 좋아 빨리 깨치든, 오랜 시간 공들여 깨닫든, 깨달은 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자기 것이 된다. 그러니 그게 뭐든 원리와 이치를 깨닫도록 애쓰고, 초심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지녀야 하지 않겠나. 잊어먹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고, 망가지지 않으려면.
논어에 나오던가?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라는 말. 배우고 익히는 것에 더해 깨닫기까지 하면 더 많이 기쁘지 않겠는가? 중요한 건 깨닫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