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것

by 김종열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무엇일까? 라는 생각. 어릴 때 할머니 이야기에 등장하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던 호랑이일까? 이런저런 소소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잡아간다던 순사일까? 아니면 그런 말을 하던 어른들이었을까? 학창 시절의 무서운 규율 담당 선생님? 군대 생활할 때 유격훈련의 조교? 엄격하고 냉랭했던 직장 상사? 남자들이 농담인 듯 진담처럼 가장 무섭다고 말하곤 하는 아내? 놉! 아니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것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오해’이다.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적이 있었다. 나이도 같고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했고 이런저런 교류가 있었던 터라 당연히 도움을 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도움은커녕 오히려 뒤통수까지 맞는 충격을 받았다. 혼자서 친하다고 오해한 거였다.

반대로, 나는 세상 공평하게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편파적이라고 오해하기에, 그런 게 아니라고 몇 차례 항변했지만 끝내 곁을 떠나버린 사람도 있었다. 오해가 무서운 까닭은 이처럼 오해하는 사람과 오해받는 사람의 생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당하면 무서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주고받는 오해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일까?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의 소재가 오해이니 말이다. 하긴 오해로 인한 연인들의 이별, 오해로 인한 갈등과 분쟁과 증오 등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이긴 하다. 소설 속에서 건 현실에서 건 오해는 상대방에 대한 무지나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되고, 소소한 오해는 소소하게 무서운 결과를, 무거운 오해는 영원히 남이 되어버리는 큰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해보다 더 무서운 건 없을까? 그럴 리가 없다. 있다.


오해보다 더 무서운 것. ‘아집’이다. 오해가 타인의 뜻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라면, 아집은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이다. 그래서 아집은 다른 이의 의견이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운다. 오해는 풀 수 있는 여지라도 있지만 아집에 갇혀 버리면 그 벽은 심하게 두껍고 무서운 울타리가 되어버린다. 왜 가끔 벽에 대고 말하는듯한 갑갑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팍팍한 고구마가 목을 가득 메우고 있는 듯한. 그 답답함은 오해보다 더 무섭다. 그리고 그런 아집이 오해와 만나면 ‘오! 마이 갓’이다. 또, 그리고

불행하게도 오해와 아집은 생각보다 자주 만난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람과 자기중심적인 아집이 있는 사람, 누가 더 많은 오해를 할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러니 오해와 아집은 매우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다.


오해를 장착한 아집이 있던 분이었겠지. 오래전 어렸을 때, 아무리 진심을 담아 말하여도 통하지 않아 ‘가슴 아프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일찍 알게 해준 분. 그 어린 나이에 가슴이 아프고 그 어린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건 그만큼 무서운 일이라는 것이다. 오해와 아집이 만나면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생긴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나? 세상 억울한 경험. 그렇기에 더 무서운 일일 테고. 그렇다면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무서움을 주진 않았을까? 아집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오해하여 억울함을 느끼게 하진 않았을까?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유명인이든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든, 싫은 사람이 있다는 건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무지하여 나쁘다고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도 모르는 사이 아니, 알면서도 애써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아집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건 아닌가?


자기의 생각에 갇혀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는 편협한 사람이 바른 사람일까?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오해했더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른 사람일까? 정답은 누구나 알 것 같으니 오해라는 알을 깨보면, 나를 가두고 있는 아집이라는 벽을 넘어보면 어떨까? 화목한 가정,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서. 물론 이 또한 쉽진 않겠지만….


에곤 실레-가족.png 에곤 실레-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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