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산책인가? 이사인가?

by 김종열

다음 날이다. 햇살이 지나치게 좋다. 이런 날엔 산책이다. 그 애의 산책길 준비는 내 산책길 준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어쩌면 산책시간보다 산책 준비시간이 더 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추위에 대비하고, 넘어질까 하는 걱정에다, 걷지 않으면 태울 유모차까지. 이사 가는 건가?


산책길을 천천히 걷는다. 아주 심하게 천천히. 나는 몇 발자국 걷다 멈춰 서고, 몇 발자국 걷다 돌아보고를 반복한다. 산책이, 산책이 아니다. 그 애 때문이다.

걸으며 바람을 느끼고, 나무를 느끼고, 하늘을 느껴야 그게 산책인데, 할배, 할매는 딸랑 몇 걸음 걷고는 그 애와 까꿍 하며 놀고 있다. 진짜 놀고 있는 것 같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온다. 산책 후가 더 피곤한 느낌이다. 아지야와 아지야의 그녀와 그 애는 이제 그만 갔으면 좋겠다. 근데 안 간다. 과일을 먹는다나, 어쩐다나. 평소 그렇게도 좋던 과일 먹는 시간도 귀찮아진다. 그러면 먹지 않느냐고? 아니 먹어야지. 귀찮은 거랑 먹는 거랑은 별개의 문제잖아.


이제 진짜 그들이 가는 모양이다. 산책 준비보다 훨씬 많은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하는 걸 보니 말이다. 하룻밤을 보내는데 저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한가 싶다. 준비가 끝났으니 간단다. 브라보!

“잠깐만” 아지야의 목소리다. ‘뭘? 왜?’ EC 화장실에 간단다. 이상한 습관이다. 꼭 집을 나서기 직전에 화장실 들리는… 그것도 자기네 집에 갈 때만.


길어도 너무 길고 부산스러운 작별 인사와 함께 그들은 그들의 집으로 떠났다. 누군가와의 작별은 서운한 것이어야 하고, 아쉬운 것이어야 하는데, 이 작별은 시원섭섭하다.

나는 당연히 내 사랑을 뺏어가는 그 애 때문에 시원한 게 당연할 테지만, 할배, 할매도 약간은 그런 것 같다. ‘손주는 올 때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다’는 사람들의 말이 맞나 보다.


그 애는 점점 더 자라서 나를 넘어설 것이다. 내 짧은 수명이 끝난 뒤에도 그 애의 정신적 성장은 계속될 것이고, 언젠가는 아지야와 아지야의 그녀도 넘어설 것이다. 어리디 어린 강아지의 뜀박질이 어느 순간 내 달음질 보다 빨라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산다는 게 그런 것 아니겠나. 다음 세대에게 추월을 허용하는 것.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 인생이나, 견생이나 똑같이…


딩동 하고 벨이 울린다. 아지야와 아지야의 그녀가 집으로 들어선다. 근데 큰일 났다. 아지야의 그녀의 배가 또 불러온다. 조만간 그 애가 두 명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으~~~~~


* 개 세이(개+에세이, 개+say)는 반려견의 관점으로 쓴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