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몽규를 바라보다

영화 <동주>

by 후이



감독 : 이준익

개봉일 : 2016.02.17

장르 : 드라마

출연 : 강하늘, 박정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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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흔들려야 청춘인 걸까




시대에 따라 20대가 겪는 문제는 다양했다. 조부모와 부모 세대는 전쟁과 가난으로 힘들었다면, 현세대는 심리적 불안, 혐오, 차별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사회 문제와 함께 처음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20대들의 불안은 과거에 비해 현재에 증폭되었다. 이제 현 사회는 '자기 내면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고민하는 나'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홀로서기를 시작한 20대는 정서적으로 많은 감정을 느낀다. 첫 대학, 첫 연애, 첫 사회, 첫 취업, 첫 출근 등 다양한 경험의 단어들 속에서 오고 가는 이 마음엔 첫 설렘과 기대가 넘친다. 하지만 부족한 경험에서 오는 미숙함과 실수에 자책하는 20대 시절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첫', '처음'이라는 단어에는 무게가 있던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 다른 사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인간관계, 현실의 높은 벽과 비교되는 친구들, 막연한 미래까지, 20대는 그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다이내믹한 인생들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프고 흔들려야만 청춘이라는 말이 이들을 표현하는 것처럼 영화 속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의 다사다난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분석하고 감독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담고 싶어 했는지 알아보려 한다. 1940년대, 이름도, 언어도, 꿈도 빼앗겼던 청춘들의 고난과 어리고 젊었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내면은 러닝타임 110분 동안 쉼 없이 위태롭고 흔들렸다.








흑백이 가져온 윤동주와 송몽규




빛나던 두 청춘이 무너진 건 단 3년이었다. 두 사람이 유학 갔던 1942년부터 순국했던 1945년까지 이 모든 시간은 채 3년이 되지 않았다. '시'로 독립을 염원했던 윤동주와 혁명으로 독립을 이루고자 독립군에 자원한 송몽규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했다. 특히, 동주를 향한 몽규의 배려와 언제나 몽규와 함께하고 싶었던 동주의 관심은 이 영화의 주요 서사로 자리 잡는다. 일제 아래에서 치욕스러웠던 시간을 지나 광복을 맞이했던 순간까지 그 시절의 청춘은 수많은 일을 겪었다. 가난, 차별, 멸시, 비난, 모든 것이 무너졌던 시간이었다.


영화는 흑백 화면으로 암울한 당시 시대와 두 인물의 대비되는 성격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이런 연출은 관객에게 인물의 내면과 감각을 스며들게 하는 데 주력했다. (1) 흑백 화면은 색채 화면이 주는 선명한 화질을 흑백으로 치환해 반(反) 스펙터클의 시각효과를 유도시켜 리얼리즘 미학 형식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2) 이는 주로 시대나 사회에 대한 관점을 전달하기 위해 채택되고, 사회적 묘사들을 중요하게 다루거나 추상적인 사건이 아닌 구체적인 현실을 포착할 때 사용되었다. 당시 교복, 공산당과 인민군, 창씨개명, 기독교, 독립 등으로 당시 1940년대를 표현하고,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윤동주의 머리를 자르는 일본 군인, 송몽규와 독립군들의 아지트 발각, 고문 등으로 절망적인 순간을 미세하게 포착했다. 색채 영상이 없었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 관객들에게 리얼하게 전달하는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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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미장센은 감독의 수많은 의도가 전달된다.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색채와 패턴, 장식품, 배경, 등장인물까지 장치는 감독이 관객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최적의 요건이다. 하지만, 색이 없는 것은 감독의 많은 의도를 사라지게 하는데,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 점을 이용해 스토리와 인물 간의 관계에 주목하게 만든다. 흑백으로 주변의 시야를 차단하여 다른 미장센에 눈길을 가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두 인물과 다양한 인물들의 상호작용, 사실적 바탕에 깊게 몰입하여 스토리를 파악하는 데 도움받는다. 즉, 흑백 화면은 이 영화의 대표 미장센이자 프레임 안에서 인물과 관객의 거리를 좁히는 데 기여하는 감독의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주>는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하고 차별화된 화법으로 흑백 양식을 활용한다. 등장인물에 맞춰진 시각은 윤동주와 송몽규의 인물적 사실관계와 그들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영화의 처음, 윤동주는 내면의 단단함이라면 송몽규는 외면의 단단함으로 적극적인 독립투사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객은 프레임 안의 색채로부터 오는 주변의 환경을 잠시 닫아놓으면서 오는 시대적 환경과 맞물려 마치 그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관객의 시야를 마치 1940년대에 있는 느낌을 줘 인물들의 관계와 역사 속 사실을 깊게 바라보는 눈을 높여주는 계기가 된다.








윤동주의 '시'




(3) 영화는 역사성보다 캐릭터의 심리와 감정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주인공들의 고뇌와 내면을 윤동주의 시로 표현하는데 주로 자신의 자아 성찰과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암울한 역사성이 담긴 장면에서 등장한다. (4) 이때 '시'는 사실주의적 시공간 속에서 비현실적인 요소를 강조해 인물들의 삶과 관계의 본질에 집중하게 만들어 정서적인 힘을 발휘시킨다. 이는 사건에 대한 작가적인 태도를 명확하게 구축하고 인물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준다. 영화는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 속 비현실적인 요소인 윤동주 시인의 '시'를 내레이션으로 강조해 윤동주와 송몽규가 느꼈을 감정과 불안을 관객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표현했다. 이로 인해 관객은 사실만을 토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닌 직접 캐릭터와 같은 시공간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민감해지게 된다. 이것이 영화 <동주>가 주는 '시'의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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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심리적 바탕에 따라 배치된다. 주권을 찾기 위해 떠난 송몽규의 장면에는 <흰 그림자>, 윤동주와 송몽규가 연희 학교로 떠나는 장면에선 <새로운 길>, 윤동주의 독방 안에서의 <별 헤는 밤>, 짝사랑했던 여진(신윤주)과 함께 걷는 길에선 <프란시스 잠>, 아우들과의 대화에선 <아우들의 인상화>, 교토로 가기 전 창씨개명 당시엔 <참회록>, 쿠미(최희서)와 함께 시를 출간하려 할 때 <플랫폼>, 송몽규가 일본 형사들에게 잡힐 때는 <자화상> 등 윤동주 역의 배우 강하늘 내레이션은 마치 윤동주 시인이 직접 자신의 처한 상황을 겪은 듯하게 읊어나간다. 밝은 분위기일 때 들리는 시에선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는 것과 위태롭거나 위험했던 상황에선 목소리가 낮아지고 긴장되는 톤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윤동주의 시는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한데 어우러져 관객들과 거리를 좁히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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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는 윤동주의 시만 다루지 않는다. 정지용 시인을 좋아했던 그는 좋은 시상을 떠올리기 위해 정지용의 시를 줄곧 생각하곤 했다. 그 예시로 교토 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 나오는 <압천>을 들 수 있다. 그만큼 윤동주에게 '시'는 그를 대변해줄 수 있는 내면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가 시를 쓰면서도 시를 쓰는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송몽규와는 달리 글을 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창씨개명을 하면서까지 유학을 가야 했던 현실과 혁명을 위해 독립군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자신을 말리는 송몽규를 보며 그는 마치 현실이 무서워 문학으로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송몽규는 어린 나이 때부터 확고한 신념과 의지로 독립군에 자원했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자 했다. 윤동주의 입장에서 그는 자신과 달리 용기 있게 맞서 싸우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나'를 알아가는 방향성




우리는 누구보다 독립을 염원했던 두 청년의 이야기를 엿보았다. 1940년대, 주체를 잃은 시대와 주체성이 확립되지 못했던 청춘들의 상황은 그 누구보다 닮아있었다. 주인을 잃은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지도 잊어버린 채 홀로 버텨나가고 있었고, 주체성을 잃은 청춘들은 강한 적군 앞에 나약한 자신들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좌절했다. 시대와 청춘, 두 매개체의 확고하지 못한 주체성은 처한 상황에 맞물려 극도의 절정을 이루며 모든 것이 위태롭기만 했다.


언제까지 흔들려야 할까. 당시 주체성을 갖지 못했던 두 매개체들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은 무수히 흔들리고 짓밟히고 있다. 시대가 지나도 청춘들이 겪는 그들만의 커뮤니티는 아직까지 그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 처음 마주하게 된 사회에서 겪는 '첫'의 순간은 위태롭기만 하다.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주체성을 갖지 못한 두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과 주체성을 잃은 사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확고한 주체성이 없는 이들은 불안하다는 것을 영화도 사회도 현재의 우리도 겪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흔들림은 언제까지 흔들려야 하고 어떻게 멈출 수 있는 것일까. 답은 '나'를 알아가는 방향성을 찾는 것이다.


어른이 청춘에 비해 흔들림이 덜한 것은 익숙함과 경험에서 오는 차이에 있을 수 있지만, 더 명확한 것은 방향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기 위한 명확한 방향성, 알 수 없는 미래가 닥쳐오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어른들 역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청춘들에 비해 좀 더 안정성을 찾게 된 것은 흔들리지 않기 위한 그들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갖고 있는 내 흔들림은 비로소 나의 방향성을 일깨우고 나서야 스스로 멈출 수 있게 될 것이다.











(1) 문정미, 디지털 시대의 흑백영화 미학,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2022, p.6.

(2) 문정미, 디지털 시대의 흑백영화 미학,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2022, p.6.

(3) 문정미, 디지털 시대의 흑백영화 미학,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2022, p.7.

(4) 문정미, 디지털 시대의 흑백영화 미학,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2022, p.8.






<참고문헌>

1. 논문

문정미, 디지털 시대의 흑백영화 미학,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