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사회, 패배한 청춘 '병구'

영화 <지구를 지켜라>

by 후이


감독 : 장준환

개봉일 : 2003.04.04

장르 : SF, 스릴러

출연 : 신하균, 백윤식, 황정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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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청춘




청춘은 위태롭다. 마치 어린 새싹이 꽃피우기 위해 언 땅을 뚫고 올라가는 것처럼 지금의 청춘들은 어른들의 보호막을 뚫고 그들의 세계에 올라가기 위한 과정이 필요했다. 험난하고 위태로운 시간의 연속이지만 자유를 가진 ‘어른’들의 세계는 그들에겐 유토피아와도 같았다. 그래서 어린 청춘들은 어른들의 보호 아래 진정한 ‘어른’들의 세계에 다가서는 날을 기대하며 성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청춘이 마주한 그들의 세계는 자신들의 세상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는다.


사회는 노력도 꿈도 꿀 수 없는 환경에 이른다. 1997년 IMF 파동, 2008년 글로벌 금융사태를 전면으로 맞은 20·30세대는 일찍이 현실을 깨닫고 환상 속 작품이 아닌 그들을 공감해주는 성장영화로 눈을 돌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건 청춘들이 주인공들과 자신을 동일시해 부조리한 사회가 붕괴하는 서사와 캐릭터에 깊은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환상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을 영화는 명확하게 보여 준다. 주인공 병구(신하균)가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부조리한 사회와 악의 캐릭터를 무너뜨리기 위한 서사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이는 관객, 청춘들의 높은 흥분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안겨준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현실의 청년을 주인공 ‘병구’에 빗대어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회에 맞서는지, 그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청춘들을 무너지게 했는지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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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지구에 사는 외계인으로 인해 곧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 믿는 청년 병구가 경찰청장의 사위인 강만식(백윤식)을 지목, 그를 납치해 벌어진 일을 다룬 블랙코미디극이다. 서사는 우스꽝스럽지만, 이 영화를 단순 블랙 코미디극으로 넘기기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것은 병구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우리를 대변하는 '병구'




첫 등장은 병구의 보이스오버를 통해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나타나는 1)병구의 기상천외한 행동들은 그가 왜 망상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관객들에게 친절히 설명한다. 이것은 영화 중반부, 강만식의 거짓말에 속아 병원으로 간 병구에게서 해방된 강만식이 우연히 병구의 일기장을 보면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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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의식불명의 어머니, 죽은 애인, 가난, 왕따, 소년원, 교도관의 폭행 등 몽타주 기법과 ‘Over the Rainbow’는 밝은 멜로디와는 상반된 그의 현실을 보여 준다. 사랑을 원했던 순이(황정민)의 질문에서는 이별을, 과거 회상에선 위로를, 엔딩에선 희망을. ‘Over the Rainbow’는 그가 겪는 고통의 주위를 함께 머물며 영혼처럼 맴돌았다. 작은 행복을 바랐던 병구의 끝은 죽음이었고, 영화는 그를 위해 무지개 너머 그의 세상이 펼쳐지길 바라며 위로 곡을 선사한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병구의 삶은 순수함을 잊은 어른들의 괴롭힘과 그들처럼 물들어버린 또래로부터 배신감을 느낀다. 2)그래서 병구는 이제 자신을 괴롭혔던 이 잔인한 현실을 끊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자신은 너무 나약했기에 상상에서나마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복수한다. 그리고 이 상상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타당한 합리성을 택하는데, 그들이 지구를 파괴하러 온 ‘외계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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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병구는 이 논리를 이용해 자신을 괴롭혔던 외계인을 응징한다. 하지만 망상 속에서 탄생한 외계인의 존재는 강했고 현실에 나약했던 그가 감당하기엔 벅찬 존재들이었다. 특히 그의 망상 속 외계인 중 강만식은 더욱 그러했다. 여느 외계인들과는 달리 눈에 띄는 직업과 권력을 가진 강만식은 든든한 지원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랬기에 강만식이라는 존재는 병구에겐 넘을 수 없는 산과도 같았다. 전기에 감전되고, 날카로운 창에 찔리는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치지만, 병구는 결코 의식을 잃지 않은 채 외계인을 죽이고자 현실에 저항한다. 그리고 마침내, 강만식 위에 올라 총을 겨누며 자신을 옭아매던 부조리한 사회의 축을 끊어내는 듯했지만 결국 또 다른 사회의 총에 맞으며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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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끝내 현실에 무너져 패배한 병구를 결말로 비춘다. 그의 죽음은 혹독한 사회를 타파해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했던 청춘들이 거대한 현실 앞에서 더는 반격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그들이 반격한 사회는 병구에게 총구를 가했던 형사처럼 청춘들에게 죽음을 선사했고 아무렇지 않게 재가동하고 있다는 것을 각인시킨다. 병구의 패배를 통해 청춘은 사회는 혼자 싸우기엔 무리가 있었고, 맞서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방향을 틀어 이 사회를 끌어안아 싸우는 방법을 택해 스스로 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는 괴물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패배한 청춘, 그들의 도약




병구는 외계인을 물리쳐 지구인 자신을 구하고자 했다. 평화를 원했지만, 생각보다 외계인들은 강했고 나약했던 지구는 마지막 외계인 강만식에 의해 폭발하는 것으로 굴복한다. 청춘은 완전히 외계인에게 패배한 것이다. 그들은 사회에 두려움을 느꼈고 혼자 싸우는 것은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사회를 맞서는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그들은 처절하게 쓰라린 패배를 통해 인정한다.



아무 준비 없이 마주한 세상은 잔인했고 갑자기 어른이 된 청춘을 반기는 이는 없었다. 일어서는 법을 가르쳐주는 세상은 지났고 이제 걷는 건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병구는 힘겹게 버티는 현실 속 청춘들을 대변하고 있다. 부모 세대보다 뛰어난 능력, 높아진 국가 경제 수준을 누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청춘들의 삶은 무너져 갔다. 부모 세대에겐 난간을 뚫고 나갈 힘이 있다고 믿었지만, 지금의 청춘들에겐 소위 금수저 집안이 아니고선 이 사회를 탈출할 수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보편적이진 않지만,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가 부서지는 찰나를 영화에 그려냄으로써 이 시대 청춘들의 현실을 보여 주었다. 이 세상의 청춘들이 안타까웠으며 그들을 이렇게 만든 현실이 원망스러운 거다. 하지만 냉정하게도 청춘의 완패였다. 영화는 병구의 광적인 집착을 통해 그의 고통과 노력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청춘들을 대변하며 위로해 주었다. 비록 현실이 바뀐 건 없지만, 병구를 통해 청춘들은 어른들이 아닌 자신과 같은 동년배로부터 한층 더 성장하고 있었다.









1) 외계인 관련 정보 수집, 강만식 납치, 십자가에 못을 박는 행동과 같은 이상한 고문들

2) 파스를 사기 위해 읍내 약국에 들른 병구는 우연히 공장에서 같이 일한 불량 청년을 마주친다. 멋진 모습으로 그를 많은 사람 앞에서 무찌르지만, 이것은 모두 병구의 환상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현실에서의 병구는 '왕따 새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