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감독 : 장준환
개봉일 : 2013. 10. 09
장르 : 액션, 스릴러
출연 : 김윤석, 여진구 등
해당 작품은 앞선 작품 <부조리한 사회, 패배한 청춘 '병구'>와 이어집니다
사회와 청춘의 대립
청춘은 노력만으로 될 수 없는 사회, 꿈꿀 수 없는 환경, 가중되는 삶에 치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을 그대로 흘려보낸다. 부모 세대보다 뛰어난 능력, 교육 혜택, 높아진 국가 경제 수준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청춘들의 삶은 추락하기 이른다. 부모 세대에게는 그 난관을 뚫고 나갈 힘이 반드시 있다고 믿었지만, 지금의 청춘들에겐 소위 금수저 집안이 아닌 이상 이 사회의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청춘들은 이 사회에 순응하며 위로받지 못한 채 외롭게 살아가야 할까. 지속되는 각박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기성세대와 정부는 청춘들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지만, 그 어떤 것도 청춘들을 위로해 주는 건 없었다.
장준환 감독의 세 장편 영화 <지구를 지켜라>,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1987>은 부조리한 사회 속 위태로운 청춘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사회-청춘의 대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특히 영화는 불안정한 사회 속 위태로운 청춘들을 각 영화의 주인공들에 대입해 현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데 특화되었다.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는 사회에 맞서 패배했던 청춘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의 ‘화이’는 병구가 해내지 못했던 사회를 정면 돌파하는 방법을 찾아내 가능성을 열었고, <1987>의 ‘연희’는 앞선 두 명의 인물이 이루지 못한 승리를 마침내 가져다줬다.
그중 두 번째 장편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는 청춘들이 우회적으로 사회에 부딪히면서 오게 된 변화에 관해 얘기한다. 주인공 화이(여진구)가 다섯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원수를 불러들여 그들이 자멸하게 만드는 방식은 앞선 병구가 이루지 못한 승리를 이끌어주는 큰 계기가 된다. 이 대목에서 화이는 병구와는 또 어떤 다른 계기와 방식으로 가능성을 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화이, 그가 맞선 세상
화이는 일명 낮도깨비라는 조직에 납치되어 지난 14년 동안 학교 대신 범죄 기술을 익히며 예비 범죄자로 자란다. 다섯 아버지의 품속에서 평화롭게만 지낼 것 같았던 그의 일상을 바꾸는 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재개발 현장에 유일하게 남은 임형택(이경영)을 살해하는 일이었다. 제 손으로 직접 죽인 이가 친부라는 것을 알게 된 이 지점은 지난 14년 동안 세뇌되었던 ‘화이’의 심리 변화가 두드러지는 구간이자, 기성세대가 대물림한 사회 시스템을 스스로 끊어내는 계기가 된다.
다섯 아버지 중 제일 이성적인 판단력을 가진 진성(장현성)은 화이가 제일 믿고 의지했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들 중 제일 존경했던 이의 배신은 어린 화이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감정이었다. 특히 진성의 암묵적인 동의는 지난 14년의 세월이 잘못되었다는 긍정이자 그 방식을 대물림하고자 했던 아버지들의 분노와 배신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화이는 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던 다섯 아버지, 괴물들을 끊어내고자 진성을 죽이는 것으로 전쟁의 신호탄을 날린다. 괴물이 만들고자 했던 괴물이 아닌 스스로 괴물을 집어삼켜 새로운 괴물로 탄생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제일 우두머리인 석태(김윤석)가 진성의 죽음을 다른 아버지들에게 알리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절정에 다다른다.
병구와 화이가 맞선 세상
화이의 행동은 감독의 첫 번째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와 매우 유사한 행동을 띤다. 병구는 과대망상으로 외계인을 처단하고자 했다면, 화이는 그동안 배운 살인 기술을 이용해 다섯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으로 올가미와도 같았던 악을 끊어내고자 했다. 두 사람이 사회에 맞서는 대처방안은 다르지만, 서로가 같은 목적을 향해 있다는 점은 유사했다. 그러나 화이는 병구와 달리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맞선다. 병구는 혼자 외계인을 처단했다면, 화이는 아버지들의 원수를 이용해 우회해서 처단하는 것이다. 앞선 세대인 병구의 방식은 무모했고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를 불러왔다는 걸 알아차린 청춘들은 이제 다른 방안을 마련한다. 자신이 직접 사회에 맞서는 것이 아닌 서로가 자멸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말이다. 그 방식 통했고 명쾌한 성공을 해낸 것처럼 보였지만, 석태가 창고에 등장하면서 그 방안은 물거품이 된다. 결국, 청춘이 생각한 방식은 현 사회의 최종 보스까지는 다가서지 못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청춘들은 이제 정면으로 맞서고자 한다.
화이가 마지막으로 만난 보스는 강하고 위대했다. 이는 병구가 외계인인 강만식을 죽이려 했지만, 여태껏 다른 외계인들과는 다른 힘을 가진 그에게 무서움을 느낀 것과 유사했다. 마찬가지로 화이 역시 마지막 남은 보스, 석태를 없애고자 하지만 그는 화이의 약점을 더욱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 거대한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하지만 화이는 전작인 병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악에 도전한다. 병구는 사회에 맞서 일방적으로 덤볐다면, 화이는 그의 믿음과 신뢰를 얻어내 함정을 놓는 것이다. 그래서 화이는 보스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복종하는 모습을 취하는 척 석태의 시선을 돌린 후 숨겨놓은 총을 꺼내 그를 죽이면서 다섯 아버지가 만든 자신의 속박을 스스로 끊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제 화이 속 세상은 병구와는 다른 결말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병구의 세상은 변화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화이의 세상은 이 부조리한 사회를 끊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사회를 타파할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1)자신을 납치했던 다섯 아버지를 차례로 죽이고, 마지막 전 회장(문성근)을 암살한 뒤 조용히 빠져나가는 장면이 그 대목이다.
화이의 세상은 앞선 세상과 다르게 청춘들이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준다. 전작에선 사회가 가진 힘과 권력의 무서움을 맛보았다면, 이번 작품에선 세상이 변하진 않았지만 사회가 만든 부조리한 시스템을 파괴하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 속 청춘들이 시민항쟁을 통해 현 사회가 붕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선 병구와 화이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 마침내 <1987> 속 연희로 인해 결국 무너지고 청춘들이 이겼음을 말이다.
변화하는 세상
<지구를 지켜라>가 개봉한 10년 뒤의 작품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는 앞선 작품에서 등장한 청춘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회에 맞선다. 전작의 병구는 평화를 지키고자 했지만, 외계인들은 생각보다 강했고 나약했다고 지구(병구)는 마지막 외계인인 강만식에 의해 폭발하면서 굴복하게 된다. 즉, 병구는 자신을 억압하던 사회인 외계인에게 무너진 것이다. 무모하고 준비되지 않았던 작전은 결국 전장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화이는 다섯 아버지로 인해 망친 지난 세월에 대한 복수로 그들의 원수를 불러들여 무너뜨리고자 했다. 병구와 달리 그는 악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화이를 통해 드디어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서사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알렸다. 패배한 병구, 가능성을 연 화이, 비록 화이의 사회에서 더 나은 현실로 변하진 않았지만 청춘들이 있었기에 사회는 변화하고 있음을 영화는 시사한다.
1) 자신의 세상을 무너뜨린 이들이 다섯 아버지였다면, 사회 규칙을 무너뜨린 것은 전 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