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랩(Living Lap)이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용자가 직접 나서서 현장을 중심으로 해결해 나가는 '사용자 참여형 프로그램'입니다. 미 MIT대의 미첼 교수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우리 마을 실험실'이라고도 불립니다. 아마 '쓰레기 무단투기'나 '상습 침수'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지역에 사는 시민들이 모여 '리빙랩(Living Lap)프로그램을 활용했다는 신문보도나 뉴스는 종종 들어보셨을 줄로 압니다.
이 리빙랩 사업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모사업에도 많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최근의 정부보조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시민참여가 가능한 지역주민 중심의 거버넌스가 반드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과거처럼 행정주도의 보조사업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최근 많은 지자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도시재생 프로그램들도 사업 구성을 보면 그 안에 반드시 도시재생센터를 구성하게 되어있고, 센터장 이하 직원들도 모두 민간인 분들로 구성됩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전통시장 특성화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문화관광형시장 공모사업도 그 내용을 보면 여지없이 사업 구성내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단이 구성되어야 하며, 이 사업단의 단장 또한 민간영역의 전문가를 선발하게 되어있습니다. 국토부나 농식품부, 행정안전부 등의 대부분의 사업들이 이 거버넌스의 의사결정 구조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정부보조사업 중 꽤 규모가 큰 농촌 협약이나일반농산어촌 개발사업들도 모두 이런 중간 협의체를 구성하지 못하면 아예 보조사업을 신청할 수조차 없습니다.
물론 이런 중간 협의체의 구성에는 여러 가지 애로사항들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되는 것이 인력풀 구성인데요.
아무래도 수도권 도시지역과는 달리 농어촌 지역에서는 이런 협의체를 운영할 만한 인재들을 발굴하기 힘듭니다. 군(郡) 단위 지역만 해도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거든요. 무슨 무슨 사회단체들은 많은데, 흔히 얘기하는 학식과 경륜,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드물어 그 각각의 임원 의자에 종종 같은 인물이 앉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딱한 사정은 시·군에서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군에서 운영하는 위원회에만 해도 보통 한 100여 개가 넘지만, 이 위원회의 위원이 저 위원회 위원으로 구성된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만큼 인력풀이 없으니까요. 도시지역이야 여러 시민단체들이 종류별로 역할별로 무궁무진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시골지역으로 내려올수록 이런 자발적 시민단체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야말로 관선시대 유행했던, 가령 새마을, 문화원, 자유총연맹, 청년회의소, 번영회 등등의 직함들이 인력풀의 주요 구성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런 인력풀들은 정부 공모사업의 중간 협의체에서 아무런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변화하는 세태와 트렌드를 읽어내기엔 부족한 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방 시·군(郡)단위 지역의 공모사업들은 담당 공무원이 애를 먹는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하며, 이런 점 때문에 애초에 목적했던 사업들이 잘 진행될 리 만무합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고자 일부 전문가 집단 트레이닝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문화관광형 시장사업의 경우 해당 사업들을 먼저 추진해 본 경험이 있는, 그리고 그 경험자들 중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보인 사람들을 추려, 지방사업단에 내려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위 인력풀은 중앙에서 구성하되, 사업의 무대는 지방이 되는 식이죠. 제가 보기엔 분명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타지방에서 온 사람이라 지역 상인들과의 융화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겠습니다만, 사업을 굴려갈 아이템과 경험치들이 존재하는 만큼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다른 공모사업에서도 널리 이용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앞서 말씀드린 도시재생사업의 전문 인력들도 이런 체계를 응용하고 있다고 추측합니다.
물론, 이런 사업방식은 공무원에게도 유익한 점이 많습니다.
보통 공모사업의 경우, 기존 업무에 업무 하나를 더 셀프 추가시키는 경우이기 때문에 웬만한 열정이 아니고서는 사업을 진정성 있게 끌고 가기 힘듭니다. 이런 전문인력의 보조없이 담당 공무원 혼자 하나부터 열까지 숟가락 젓가락 챙기다 보면 어느새 진이 다 빠지기 십상이죠.
무엇보다 사업비의 정산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학을 뗀다'라는 표현이 공공연합니다. 사업비는 단체들이 쓰면서 그 정산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해 공무원이 일일이 영수증까지 챙겨야 한다면, 이런 사업을 누가 따오려 하겠습니까? 형편이 조금 나아졌길 바라지만 여전히 이런 경우들은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점에서 공모사업이나 보조사업들은 아무래도 공무원 입장에선 인기가 없습니다. 오리려 기피대상이죠.
구조에서 오는 이러한 불합리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공무원이 사명감이 없어서야' 라고 단정 짓기에는 분명 억울함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는 귀농, 귀촌, 혹은 새로운 관광·레저 트렌드를 좇아 지방으로 내려오는 다양한 직업군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직업군에는 유능한 분들이 많이 섞여 계신데, 이 분들 중에는 이 공모사업(리빙랩형)들을 잘 이끌어가실 분들도 다수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지방에도 새로운 인력풀이 구성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기는 것이죠.
이런 분들을 잘 발굴하고, 대화를 나눠보고, 또 사업에 참여시키는 것이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신경 써야 할 중요한 행정역할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러한 공모사업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