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동물 대신 반려 주식을 키웁니다

사진: Unsplash의Maxim Hopman

by 긴오이

내가 주식 계좌를 처음 팠던 건 2020년 2월 경이었다. 바로 그 대세장이었던 코로나 시기 말이다. 처음엔 주식을 해서 뭘 어쩌겠단 생각은 없었다. 그냥 세태에 뒤처지는 게 싫었다. 돈을 잃고 말고 보다, 우선 하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다행히 내 뜻에 과감히 동조해 주는 여직원이 하나 있어 난 센 척하느라 내가 내 무덤판다는 생각은 곧 물리쳤다.(그날 그 여직원이랑 함께 계좌를 텃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당시 내가 주식 계좌를 텄던 건 순전히 어떤 경험 우선주의에 대한 갈망 같은 것에서 비롯됐다. (그전에 분명 어떤 계기가 있었겠지만) 가령 이런 것이다. 난 갑자기 '죽기 전에 땅도 한번 사보고, 건축도 한 번 해보고, 사건 사고에 휘말려 소송 같은 것도 한 번 당해 보고, 그래서 남들은 안 가 본 경찰서나 법정도 한 번쯤 나가 봐야 인생이 완성되는 것 아니냐' 라는 별난 생각에 사로잡혔다. 웬일인지 그게 다 나의 발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잡다한 밑천으로 흥미 좀 끄는 인간으로 변신하고 싶었다. 그렇게 변신만 하면 내 가치가 리밸런싱 될 줄 알았다. 직장 내 줄 서기도 좋지만, 그런 뻔한 시나리오 말고 사내 정치 따윈 가볍게 뛰어넘는 나만의 고유한 밸류에이션 값을 창조해 내고 싶었다.


'공정, 공정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그런 실망값이나 소외값도 다 에너지인데 그걸 돈으로 따진다면 그것도 꽤 큰돈일걸. 그런 손해감을 감수할 바에야 차라리 내 업무엔 누구의 입김도 작용하지 않는 독립적 치외법권을 설정하겠어. 야, 그러면 팀장이든 과장이던 다 건너뛰겠단 소리잖아, 너 그러고도 무사하겠냐. 뭐 어때, 난 남들과는 좀 다르게 살고 싶어.'


그땐 그런 발칙한 상상만으로도 이상하게 키득키득 스트레스가 풀렸다. 정말 웃긴 건 실제 그 해 2건의 소송에 휘말려 얼떨결에 답변서도 써보고, 준비서면도 제출하면서 난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법원이라는 데 나가 봤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 일 이후로 난 놀랍게도 더 이상 소장이란 것에는 쫄지 않게 됐다. 그때 내가 뭘 느꼈냐면 바로 이런 게 내가 창조하고 싶었던 밸류에이션값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지성의 감각'이랄까.


맨 처음 샀던 건 삼성전자 주식이었다. 시범 삼아 1주를 사 봤다. 매수 버튼을 누르면서 꼴랑 그 한주로도 가슴이 쿵쾅쿵쾅 했다. 뭔가 대단한 게 시작됐다는 느낌이 뽝 와닿았다. 막연하게 두렵고, 귀찮고, 망설였던 뭔가가 갑자기 홀가분한 기분으로 뒤바뀌었다. 착수란 게 한 점 놓기가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도미노처럼 진행됐다. 물론 내 상쾌한 기분처럼 매수한 주식들이 다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준 것은 아니다. 그냥 맥없이 흘러 흘러 바닥에 주저앉은 종목들도 많다. 누구는 물타기를 하라고 조언했지만 난 버티기로 일관했다. 그때 손해 났던 주식들을 난 여태 가랑이 밑에 껴 가고 있다. 어깨에서 팔라는 주식을 어깨까지 기다리다간 내가 먼저 속 터져 죽을 것이다. 행여 물이라도 탔다면 벌써 그 물에 빠져 죽었을 게 뻔하다. 그러니까 난 벌써 5년째 강제 존버 중이다. 최근에서야 이런 주식을 반려주식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다.


'반려동물 대신 반려 주식을 키웁니다.'


그렇다고 내가 주식을 해서 다 손해 본 건 아니다. 투자 대비 80% 정도의 수익률을 봤다. 대단하지 않은가. 초심자의 행운이라 쳐도 연 16%의 수익률을 달성한 것이다. 이걸 다 은행에 넣었다 쳐 봐라. 나도 물론 보수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이런 변동성쯤은 끌어안아야 하는 시대임을 난 진즉에 알아챘다. 하지만 비밀 하나를 털어놓자면 그 수익률은 다 물 건너 미국에서 왔다. 코스피에선 그냥 코피만 철철 흘렸다. 우리나라 지수라는 게 참 웃긴 것이 북한 때문에 떨어지고, 미국 때문에 떨어지고, 브렉시트 때문에 떨어지고.... 그다음엔 환율 때문에, 금리 때문에, 유가 때문에, 공매도 때문에, 황사 때문에, 나중엔 니가 샀기 때문에..... 란 별별 이유들이 따라 붙었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주식 시장은 날 호구로 만들지 못해 안달 난 것 같았다. 말 그대로 휴전선 근처 지뢰밭이 따로 없었다.



난 나스닥으로 망명했다. 서학개미의 깃발을 따라, 유행에 편승해 미련 없이 국적을 버렸다. 말로만 듣던 아메리칸 드림이 날 격하게 환영해 줬다. 맨 처음 호스트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었다. 그중에서도 애플은 내가 매수버튼을 누르자마자 제 몸을 1:4로 액면분할하더니, 급기야 내 주식 개체 수를 4배로 불려줬다. 난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따뜻한 대우는 자본 시장에 나와 처음이었다. 상술이니 뭐니 어쩌니 해도 애플의 팀쿡은 내게 더없는 은인이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테슬라를 영접했던 건 당연한 수순일 지도 몰랐다. 왜 얘를 더 빨리 만나지 못했을까. 이 바닥에서 얘 모르면 정말 간첩이지. 한창 테슬라가 급부상하던 시기였다. 말 그대로 천몇 조짜리 덩치가 하루에도 17%씩 올랐다가 9%씩 내리꽂는 통에 나는 혼이 쏙 빠졌다. 나를 정말 갓난애 취급하듯 테슬라는 매일 아침 나를 '어이야 둥야' 했다. 그러면서도 이 녀석은 기특하게 언제나 우상향이었다. 변동성이 뭣 같아서 그렇지 멀미만 참아내면 계좌는 계속해서 불어났다. 이런 건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모멘텀이었다. 그때 삼성전자가 시가 650조쯤 되던 시기였는데 하루 끽 움직여 봐야 2~3%가 다였다. 그런데 테슬라는 그 배가 넘는 시가총액을 가지고서도 무슨 코스닥 중소형주들처럼 엉덩이가 깨발랄했다. 주주들은 그야말로 신이 났다. 연일 테슬람, 테슬람 하며 머스크를 교주 모시듯 했다. 나도 얼른 그의 트윗에 팔로우를 꾸욱 눌렀다.


물론 미국에도 내 반려주식들이 있었다. 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어느 회사에 투자금 몇 백을 쏴 줬는데 그건 인류애를 기도하는 간절함도 있었다. 잘 되면 대박, 못돼도 난치병 극복에 이바지했다는 나름의 당위가 있었다. 임상 2단계까지 잘 치고 나가던 회사는, 3상 단계에서 갑자기 데이터 조작 혐의를 뒤집어썼다. 주가는 곧바로 곤두박질쳤다. 미국 시장이 무서운 건 브레이크가 없다는 점이다. 하루에 100%가 올라도 좋고, 200%가 떨어져도 상관없다. 몇십 달러를 배회하던 주가는 단 돈 1달러짜리가 됐다. 난 그 1달러 뭉치를 매일 다육이 돌보듯 돌봤다. 물도 주고 눈물도 떨궈 줬다. 소생을 기원했지만 끝내 회복하지는 못했다. 지금 그 다육이들은 미국 내 다른 주식의 내 이익금과 상계처리 됐다. 해를 넘기며 내가 내야 했던 22%의 양도소득세에 난 다육이를 갖다 묻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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