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Mackenzie Marco
가끔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인격이란 걸 부여해서 쓸데없는 감정 이입을 하곤 한다. 오늘만 해도 영하의 날씨에 지하 자리를 놓치고 결국 담벼락 한 켠에 차를 붙이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새 홀로 얼어붙을 혹한을 생각했다. 내 차는 25년형 신차라 반자율도 가능한데 저 혼자 히터라도 켜고 밤을 지샜으면 했다.
며칠 전 현대자동차가 피지컬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했을 때도 난 얘한테 내 의인화 버릇이 뻗칠까 걱정부터 됐다. 차에 대한 감정 이입은 순전히 명령 이전엔 절대 '작동'할 수 없는 숙명적 부동성 때문인데 내 걱정과 달리 아틀라스는 배가 고프면 제가 알아서 배터리를 교체하러 갔다. 360˚ 완전 회전 관절은 형상만 따왔을 뿐이지, 인간의 비효율성은 철저히 배제한 움직임이었다. 앞 뒤 구분 없이 자유로운 관절 궤적을 보면서 난 얘가 오히려 날 측은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불쌍한 휴먼 감히 니가 날)
반가운 소리긴 하다만 몇 천조 갑부씩이나 되는 머스크 형님이 할 소린 아닌 것 같은데. 머스크 형이 태연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저딴 소리를 내뱉고 있을 때, 난 한창 은퇴 대비 재무설계로 골머리를 썩는 중이었다. 난 고개를 쳐들고 '저게 뭔 소리야' 했다. 머스크 형은 내 주식계좌에서 거의 만수르급 추앙을 받고 있지만 가끔 이상한 헛소리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머스크 형님은 초지능 시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되면 향후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이 무한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생산 단가가 '0'에 수렴하게 될 터이니 모두가 걱정 없는 보편적인 고소득의 시대가 열린다는 소리였다. 난 당최 뭔 소린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0'에 대한 수렴을 다시 돌아봤다. 정말 어떤 미친 AI가 그냥 순수하게 '작동' 명령을 내려버리면, 정말 아틀라스 같은 애들은 뭔가를 끊임없이 생산하지 않을까. 얘네들은 정말 돈욕심 따윈 1도 없는 애들이니까. 그러니까 정의선 회장이나 머스크 형님이 돈 좀 그만 벌고 싶어도 얘네들은 그냥 '작동'만이 존재가치니까 끊임없이 뭔가를 생산할 것 같았다. 항공산업을 보면 안다. 보통 비행기 한 대 가격이 1,500억 정도 되는데 이 비행기에는 매달 붙는 고정비들이(리스료나 금융이자, 감가상각비, 보험료, 정비 계약비 등) 있다. 이 비용은 운항과 관계없이 매달 붙는 돈들이어서 그냥 땅에 서 있어도 계속 돈이 새는 구조다. 그러니까 자산 회전율 차원에서라도 운항 사업자는 비행기를 끊임없이 굴려야 하고 또 갈려야 하는 대상이었다. 난 이 소리를 들었을 때도 비행기에 감정이입이 됐다. 영원히 땅에 발 한번 붙이지 못하는 존재라니. 현대의 아틀라스나 테슬라의 옵티머스도 그런 운명이 될 것이다. 깜깜한 공장 안에서 난방이 돌건 말건,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던 말던, 먼지와 악취가 날리던 말던 휴식도 없이 로봇들은 무조건 작동할 거였다. 그로 인해 세상엔 재화와 서비스로 홍수를 이루고 원플러스 원에, 받고 더블로 가! 같은 세상이 진짜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우
물론 여기엔 간과된 사실도 있다. 인간의 이기와 욕심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을 테니까. 누구는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할 것이다. 역사와 계급투쟁이 그걸 증명했고, 인간의 본성상 다 같이 평등한 세상으로 손잡고 내려가잔 소리는 만장일치가 힘들다. 하지만 몇몇 테크타이탄 기업들의 주인들은 정말 돈과는 상관 없는 기인들이다. 언제고 '화성 갈끄~야'를 외치는 머스크 형님을 난 돈 때문에 사는 사람이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 형님은 정말 화성 갈 것 같다. 돈은 그냥 옆에서 거들뿐, 그는 그의 아이디어와 혁신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데 더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위인이다. 중국이 100개 정도의 저궤도 위성을 쏘아 올릴 때, 그는 혼자 이미 8,000개의 위성을 쏘아 올렸으며, 2028년도까지 15,000개, 최종적으로 42,000개의 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런 건 보통의 통신사업을 넘어 우주, 국방, 재난, 글로벌 인프라까지 아우르는 엄청난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다. 개인의 업적이 나사(NASA)를 넘어 MAGA의 위대한 아메리카를 뛰어 넘고 있다. 여기에 그는 차세대 데이터 센터를 스페이스X에 욱여넣어 우주에 쏴 올릴 계획도 이미 계산기를 다 두들겨 놓은 상태다. 전력공급의 한계를 365일 우주 태양광으로 해결하고, 냉각체계는 이미 우주 공간이 영하 200도씨 이하니 따로 손댈 필요도 없단다. 엄밀히 말해 그는 중세의 교황급 지위를 넘어서는 막대한 군산복합체의 빛나는 수장으로 올라섰다. 난 그런 그의 말을 쉰소리 취급할 수 없다.
인테리어 알바를 하러 올라갔다 그것이 다단계 친구의 꾐이란 걸 알았을 때, 거기서 제대 후 모았던 몇 백만 원을 투자금 명목으로 허울 좋게 날렸을 때, 난 고향집 골방에 은거하며 세상에 온갖 저주를 퍼부어 댔다. 당최 재기의 기회를 노릴 수 없었다. 복학하려면 단 돈 몇 푼이라도 쥐고 있어야 했는데 그 흔한 알바자리에도 잘난 경력증명을 요구했다. '뭐 이딴 세상이 다 있냐' 그랬던 것 같다. 이불을 둘둘 말고 방바닥을 꽝꽝 치면서 정말 밀레니엄 버그가 세상을 다 갉아버렸으면 했다. 전산이란 전산은 다 오류가 나서 세상에 경력증명이란 증명은 다 사라졌으면 했다. 그게 벌써 언제 적 얘기냐.
머스크 형 말대로 노동이 사라지면 난 은퇴 후 무얼 하며 살게 될까. 책이나 읽고 적당히 글이나 쓰고 있을까. 로마시대를 상상한다면 확실히 미래에는 철학이나 정치학, 엔터산업들이 각광받을 것 같다. 적당히 로봇 몇 대 굴리며 팝콘 봉지를 까고 넷플릭스 앞으로 기어드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그런 재미도 하루 이틀이지 어느 날은 누군가 서가에 다가가 기적처럼 한 권의 책을 뽑게 되지 않을까. 그 때 내 책도 한 권쯤 끼어있었음 좋겠다. 어! 이러다 정말 글 쓰는 사람이 우대받는 세상이 오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난 정말 탁월한 길을 걷고 있는 건데.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던 동료들이 모두 아들·딸 장성하며 희끗희끗 근심들이 돋아나는 게 보인다. 미뤄뒀던 재무설계에 서서히 빈틈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틈을 메울 마땅한 옵션들이 없다는 것은 대신 몸으로 버티잔 각오만 새롭게 다지고 있다. 재테크의 시대에 몸테크를 결정해야 하는 운명이라니. 로봇의 시대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인간에게 집중하는 놀라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