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영 웹툰작가 '쏘오리 라마'
좀 비정한 얘기지만 진짜 곤궁하고 절박한 근심 앞에 서면 그보다 더 곤궁하고 절박한 사정들이야말로 진정 위로가 될 수 있음을 한 8년 전쯤에 깨달았다. 비교 우위에서 나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구나를 느낄 때 숟가락 들 힘이 났다. 오늘만 해도 고3 올라가는 딸 애의 무참한 내신 등급 앞에 절망하고 있을 때, 내게 위안이 됐던 말은 놀랍게도 '17층 바깥 양반께서는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데 이번에 간암이 전이됐대' 라는 말이었다.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말 내 안에 사탄이 살고 있나. 이런 비인간적 역치 사고에 스스로도 고개가 절레절레 하지만 그건 그런대로 위선과 위악이 제거된 진짜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그리 돼서 잘 됐다라기 보다 거기에 비하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네가 솔직한 마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상에서 오는 어떤 종류의 상처와 실망, 낙담,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 내가 도저히 맞서 싸울 수 없다는 무력감이 올 때마다 그 반작용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녕하다'를 증명받기 위해 무수한 타인과의 비교 좌표를 찍으며 살아온 것 같다. 다들 괴로운 거라면 나도 견딜 테니까. 슬픈 네거티비즘이지만 이건 일생에 걸쳐 50년간 무려 15만 명을 진료했다는 어느 정신과 선생님(이근후)께서도 동의한 바다.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그래서 산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난 저 글을 처음 보았을 때 '사소한 즐거움' 앞에 자꾸 어떤 슬래시를 긋고 싶었다. 선생의 말대로 세상이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라면 그런 구조와 시스템은 '나몰랑' 선 긋고, 남과 북처럼 개인의 체제와 이기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딴 짓을 할 때도 '세상은 어차피 각자도생'이란 명분으로 나를 변명했고, 이런 변명이 심화되면 결국 양심과 염치로부터 진짜 자유롭기 위해선 역시 '돈'밖에 없나란 결론도 나왔다. 돈만이 사소한 즐거움을 영원히 보장할 것 같았다. 다 모아놓고 보니 역시 산다는 건 슬픈 일이네. 남의 불행에 안도하는 마음도, 이 작은 동네에서 우리 딸만 대학에 못 가는 꼴도 난 둘 다 보고 싶지 않다.
엄마는 늘 내게 똑똑하게 굴며 살라고 했는데 난 똑똑한 게 아리송했다. 가령 준다고 다 받아먹지 말고 요령껏 꾀술을 먹으라는 건 똑똑함이 아니라 비겁함처럼 보였다. 난 엄마 말을 흘려들었다. 그게 다 삶의 격언들이라는 걸 다음 날 숙취가 오면 안다. 난 변기통을 부여잡고 눈물 콧물 쏟으며 내 돈 들여 나를 괴롭힌 벌을 달게 받는다. 한심한 작태를 반성한다. 엄마의 말은 똑똑하게 현실의 파고와 풍파에 맞서 가족과 스스로를 잘 지켜내라는 염려였다. 귀가 따갑던 엄마 잔소리는 어느 날 보란 듯이 내 근로가 내 노후를 보장하지 못할 거라는 날벼락같은 통지서를 보내왔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 얘기는 하고 싶진 않지만 돈 얘기를 빼면 이야기는 겉돌 수밖에 없다. 난 알맹이 없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돈돈 하고 싶진 않지만 돈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선 돈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더구나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구조와 시스템의 빈틈으로 새로운 질서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게 보인다. 정말 재수 없으면 난 생전에 화폐개혁을 한 번 경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 사소한 즐거움 따위는 종잇장처럼 구겨지겠지. 모두를 구할 노아의 방주는 못 짜더라도, 단출한 식구 하나 태울 소박한 돛단배 하나는 마련해야 한다. 엄마의 말대로 정신 바짝 차리고 똑똑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얼마나 많은 이기로 무장해야 하는지, 또 필요에 따라 얼마나 많은 17층들의 사연을 위로 삼아야 하는지 벌써부터 가슴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자국 영토 내에서 미국 특수부대에 붙잡혀 강제 이송되는 충격적인 사태를 바라보며 난 생각을 고쳐먹었다. 고전적 미덕, 양심, 질서들이 새로운 어젠다에 얼마나 취약한지 현실의 엄혹함을 피부에 아로새겼다. 양극화라는 말을 밥 먹듯이 쓰면서도 여전히 그 진짜 의미를 모르는 세상도 난 두렵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내 자식들은 누릴 수 없게 된다는 걸 깨닫는 건 비참한 일이다. 영원히 껌딱지처럼 붙여놓을 게 아니라면 제 거처하나 마련하기 위해 평생 대출 이자를 머리에 이고 살 딸 애의 고단한 삶이 훤히 비친다. 엄마 염려대로 지금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딸애의 포지션까지 정해질 판이니 난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다. 중립기어 박은 척, 관조 타령하며 미화된 겸손과 양심으로 새벽 3시에 미처 꺼지지 않은 붉은 신호등을 대기하고 싶진 않다. 그런 건 차라리 사치에 가깝다.
난 T와 F가 딱 반반이라서 매사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간다. 뜨거웠다 차가워지기를 반복한다. 덕분에 난 불행하진 않지만 불안한 남자가 됐다. 그냥 잘 살면 되는데 그 앞에 보란듯이를 붙여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내 기저의 물욕과 영달을 느끼면서도 그런 마음을 감추려는 것 또한 부끄러운 품위란 생각을 했다. 욕망은 어디로든 날 데려갈 것이다. 난 다만 그 녀석이 좀더 내추럴하고 리드미컬하게 작동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