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실수에 대해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떤 행동의 실수라기보단 업무영역에서의 실수를 말한다. 나는 업무상 법률이나 법규, 규정, 지침을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해석이 가지는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보통 다양한 부서가 있더라도 추진되는 업무의 성격상 부득이 총괄부서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 총괄부서가 내리는 해석은 업무추진의 기준이 된다. 관련 규정이나 법규의 해석에 있어 의문이나 논쟁이 생기는 경우 총괄부서는 그 교통정리의 책임을 맡는다.
빠르고, 신속하고, 정확한 지침을 내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상호 간 문답 과정에서 문의하는 쪽도 나름의 고민 끝에 내린 논리와 근거를 갖추게 되는데, 이 때는 제법 날카로운 논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과정에서 내가 주장했던 논리가 틀리는 경우, 이 패배감을 견딜 수 없어한다. 나는 이 부분이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에 두렵기까지 하다. 그것은 내가 가진 지식과 통찰이 공격받고 무너졌다는 낭패감과 더불어 총괄부서가 지녀야 하는 업무 전문성의 빈약함이 모두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참담하기까지 하다. 특히 직업을 얻고 돈을 벌면서부터나는 더욱더 실수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직업적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나름의 전제를 두고 있어서인지 업무적 해석을 잘못하거나 논쟁을 통해 해석의 오류가 드러나기라도 하면 좀처럼 그 패배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야말로 몇 날 며칠을 이불 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로부터 업무해석이나 질의를 받게 되면자연스레 즉각적인 답을 피하게 된다. 좀 더 알아보고 확실한 답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경우는자문 이전에 담당자가 이미 여러 고민을 선행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야말로 대단히 알쏭달쏭한 경우가 많다. 답을 줄땐 보통그렇게 판단한 논거를 제시하게 되는데, 이 논거는 그 문제에 직면한 상대방은 물론이고,당시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다른 동료들에 의해서도 자연스럽게 문답 형식으로 즉각적인검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제시된 논거가 상대의 반박으로 타당성을 잃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쪽팔리는 상황이 전개된다. 나는 그머쓱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집사람은 이런 고민에 대해 내가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백하자면 한때 '내가 완벽주의자인가'라고 고민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맹세코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분명 인생의 어느 시점에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그렇게 완벽을 기할 만큼 열의 있는 대상이 없다. 아마도 학창 시절에는 공부에, 정확히는 암기에 완벽을 기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았으나, 이후 삶을 살면서 나 혼자 힘으로 추진되는 일이 거의 없는 이 세상사에 완벽을 대입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완벽하지 않으면서 완벽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 모순된 인간형의 최대 단점은 일을 일관성 있게 혹은 뚝심 있게 추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어떠한 현안에 대해 확정적 판단을 자제하는 스타일이므로 언제나 모든 경우의 수를 의심한다. 이 시점에서는 이게 걱정되고, 저 시점에서는 저게 걱정되는 식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두괄식 결론을 내놓고 이야기를 풀어가지 못한다
항상 틀릴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특히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범주는 업무 영역 외에 인간에 대한 판단, 또는 삶의 가치나 철학 등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범주여서 나는 매우 폭넓게 흔들리고 고뇌한다.
최근에 들어서 이러한 습성이 리더십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는 결론을 내렸다.
때로 리더는 이기적이어야 하고, 틀렸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때의 이기적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의 이기적이 아니라 판단의 관점을 오롯이 나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이다. 이럴 때 리더는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으며, 그러한 집중은 유혹에 흔들림이 없다. 유혹에 흔들림이 없으니 상황의 변화나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없이일관되게 일을 추진하는 뚝심이 생긴다.
나는 이 뚝심이 갖고 싶다
올 한 해 이 뚝심을 갖기 위해내가 맡은 업무 중 하나 정도를 두괄식으로 미리 결론지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론이 비록 틀리더라도(물론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조건하에) 한 해 동안은 그 틀린 결론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고자 한다.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어서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범주라면 나는 그 틀린 결론을 고수하면서 내게 던져지는 일종의 돌팔매들, 어쩌면 사실은 누가 내게 던지는 돌팔매가 아니라 내가 내게 던져왔던 돌팔매들,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스스로 보게 되는 눈치들을 온몸으로 맞아보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