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긴오이 May 14. 2022

우리가 돈보다 많은 건 쪽수

얼마 전 어느 포털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온 적 있다.


'한국인이 불행한 이유'

한국인은 대체로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불행한 편이다.

전 세계에서 10위권에 드는 잘 사는 나라인데 왜 이렇게 사는 게 힘이 드는 걸까?


결론은 우리 사회가 평생 열패감을 느끼면서 살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사람들에게 바라는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절대다수가 속하는 평균 중윗값으로 성적은 5등급, 대학은 지방대, 직업은 중소기업, 소득은 월 200대, 키는 173cm(남자) 정도라고 예를 들었다.


그런데 정작 사회에서 이러한 평균치에 대해 그 정도면 됐다가 아니라, 오히려「모자라다, 못했다, 못났다, 실패했다」의 박한 평가로 의욕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이에 더해 이것을 비하하는 용어들도 넘치게 생산해 내고 있다고 했다.(지잡대, 0소충, 180 미만은 루저, 200충, 300충, 지방충... 등등)


대체로 상위 20% 정도는 되어야 겨우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것마저도 나쁘지 않다 정도지 결코 '잘했다. 성공했다' 의 평가는 받기 힘들다고 했다.


사회 풍토가 상위 10%라는 이상하리만치 높은 기준을 잡아놓고, 그 안에 못 들면 넌 열심히 살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라는 프레임이 모든 분야에 퍼져있다고 서술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높은 기준의 보급에 가장 기여한 것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이며, 인터넷상에는 죄다 기본 학벌 SKY , 키 180 이상, 월소득 1,000만 원 이상이다 보니 이런 기준이 삶의 이상적인 커트라인으로 자리 잡게 되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자신은 낙오자, 혹은 실패자로 스스로 낙인찍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과도한 경쟁심, 향상심, 욕심의 국민성을 전면적으로 바꿨으면 한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특히 마지막 문단이 마음에 와닿았는데 원문 그대로 옮겨보면,

더 이상 저런 가치만으로는 성공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

구조적인 것만 손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인식의 대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리 구조를 좋게 바꾸어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크게 좋아지기 힘들 것이다.

철학의 부재가 큰 것 같다. 국민들이 집단적으로 정신적으로 표류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어왔던 가치관들이 하나도 먹히지 않으니까 혼란스러운 거지

많은 국민들이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규정하고 사니 집단적으로 우울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진단에서부터 해결까지 꽤 명쾌한 글이다. 특히 철학의 부재표류의 표현은 시대를 꿰뚫는 좋은 통찰이라 생각한다. 특히 철학의 부재는 생각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철학을 잃게 되었을까? 그리고 무엇에 철학을 잠식당했을까?

철학이라고 해서 저기 거창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나 춘추전국시대의 제가 백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치의 다양성이 부재한, 자본이 지성마저 지배하는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돈이 다가 아니다】란 이 간단한 인식의 전환을 일시에 이루어 버린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청렴, 명예, 자존, 지성, 정의, 양심 등의 정신적 가치가 돈보다 더 중요하다란 집단적 인식의 전환을 레드썬 하고 이뤄낸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까?


실제 인류가 저런 가치들을 돈보다 높이 평가했던 시대도 분명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고, 새로운 시도와 성취들이 자유롭게 발현되도록 메디치 가문은 그들의 부(富)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후원했다. 이들의 후원을 통해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단테, 마키아벨리 등이 빚어낸 빛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공직자에게 청렴을 요구하려면 청렴을 높이 쳐주면 된다. 어느 왕조시대처럼 청렴한 신하를 백성 모두가 귀하게 여기고, 청렴을 높은 가치로 칭송한다면, 지금도 누군가는 그 가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청렴이 무슨 밥 먹여주냐고 가정에서부터 괄시해 버리면, 누가 청렴의 가치를 쫒겠는가?


저 르네상스 시대에 인류 모두가 행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의 지수가 높지 않은 저 건너 부탄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제일 높게 나타났던 것은 시사점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스스로 행복해지고자 돈의 가치를 물리치고, 인구의 절반 이상이 당장 오늘부터 「나는 돈보다 이런저런 가치들을 우선시하겠습니다」라고 맹세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다른 세상을 열어젖힐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분들보다 많은 건 쪽수니까


결국 인적 구성원이 기초가 되는 사회 구성의 토대 속에서, 쪽수로 인식의 대전환을 일시에 이뤄낸다면 돈이 많다고 자랑할 일도, 좋은 차탄다고, 백화점에서 명품 구입했다고 전혀 뽐낼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간 돈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유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화론적으로 몸과 정신이 노동보다 놀이를 좋아하는 DNA를 장착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그 유희를 편하게, 또 쉽게 실현시키는 돈의 매력에 본능적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산업화 시기부터 우리의 철학이

잠식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행여 기적적으로 인식의 전환을 이뤄낸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시 살이 찌지 않기 위해 다이어트를 지속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전략적으로 동기화하는 것은 우리의 철학과 표류의 중심을 잡아줄 좋은 롤모델을 대중 앞에 세우는 것이다. 가급적 한 사람보다 여러 사람을 세울수록, 그리고 그러한 모델이 점차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다시 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모델을 이상삼아 자신도 그러한 모델이 되기 위해 정진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들이 결코 쉽지 않은 것도 바로,    


우리가 지닌 쪽수 때문이다.

당장 나부터 먼저 시작해야 하는데, 그것은 너무나 피곤한 일이며, 또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차선의 방법으로 자신이 그러한 선도적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런 신념 있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 온 옴으로 그를 응원해 주길 바란다. 그가 조금 독특하더라도, 또 송곳 같더라도 세상에 기죽지 않고, 혹여 배곯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이해해주고 다독여주길 바라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어떤 가치를 마치 돌탑 쌓듯 쌓아 올리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 돌탑들은 눈에 보이진 않더라도 그의 말투나 눈빛, 그리고 태도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들이 공들이는 그것이 특별히 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들은 대부분 진실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하지 못하는,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믿지 못하는 그 선도적 역할을 실행해나가는 사람들이다. 역사는 언제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진보되어 왔다.


무언가를 쌓아 올리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사람들로부터 공격받는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수고가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수고에 비해 늘 백배 천배 값지고 아름답다. 따라서 우리는 무언가를 정성스레 쌓아 올리는 사람들에 대해 그것이 아직 열개도 채 안되었느니, 혹은 다 무너질 것을 뭣하러 저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둥, 헐뜯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더 나아가 그런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는 좋지 못한 환경과 영향들이 그 사람들을 온통 흔들어  때, 큰 소리로 그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호통쳐야 할 것이다. 그래야 훗날 우리는,


진실된 쪽수를 가지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 진실된 쪽수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돌팔매를 맞는 한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