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현대 소설 중 최고의 첫 문장으로 꼽히는 '설국'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기다리던 초겨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지독한 좌절에 휩싸여있던 시기였습니다. 사연을 밝힐 순 없지만 이 시기의 좌절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터닝포인트로 작용하였습니다. 저는 갈 곳 없는 부랑자처럼 헤매다 어느 새벽, 친구에게 어렵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는 따뜻하게 자신의 자취방으로 저를 안내하였습니다.(글을 쓰다 보니 정말 고마운 친구네요)
그렇게 저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한낮을 온전히 굶고, 저녁에 오직 한 끼 식사를 하였습니다. 아마 친구는 저의 이런 사정을 잘 모를 겁니다. 폐가 되긴 싫었으니까요. 친구는 낮에는 학교에 머물고, 저녁에도 다소 늦은 시간에 귀가하였습니다. 어쩌면 그 친구도 저를 배려했을지 모릅니다. 주인도 아닌 저는 이렇게 친구의 방에 주인 행세로 보름 정도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한낮의 시간에 책 한 권을 꼽아 들었습니다.
표지가 유난히 하얀 깔끔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책 제목이 어떻게 쓰여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두 편의 소설을 한 권에 묶은 것이었습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파트리크 쥐스킨트- 「승부」"
운명이었을까요?
저 시기에, 왜 저는 저 두 편의 책을 만나게 되었던 것일까요?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의 소설 두 편이었습니다. 단언컨대 저는 아마도 남은 인생 어느 시점에도 저만큼의 강렬한 인상의 책을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사실은 「승부」가 좀 더 강렬하긴 했습니다. 왜 그렇게 빠져들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설국」의 어느 한 단면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무심히 책장을 넘기던 저는 설국의 어느 한 지점에 이르러 정말 깜짝 놀랄만한 서술과 감상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전까지 세상에서 오직 저 혼자만 경험했다고 믿어왔던 어떤 상념과 우수(憂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을 이렇듯 멋진 문장으로 풀어쓴 한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저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동질감이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작가의 시선을 제가 어느 한 시기에 똑같은 궤도로 따라간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제에게 크나큰 놀라움과 일종의 뿌듯함을 선사하였습니다. 그것은 지쳐있던 저에게 뜻밖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 소설의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득 그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선을 긋자 거기에 여자의 한쪽 눈이 뚜렷이 떠올랐다. 그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마음을 먼 곳에 두고 있었던 탓이고,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맞은편 좌석의 여자 얼굴이 비친 것이었다. 바깥은 어둠이 내려 깔리고, 기차 안은 불이 켜져 있다. 그래서 유리창은 거울이 된다. 하지만 스팀의 온기로 유리가 온통 수증기에 젖어서 손으로 닦을 때까지 그 거울은 없었던 것이다.
처녀의 한쪽 눈만은 도리어 이상할 만큼 아름다웠지만 시마무라는 얼굴을 창에 가까이 대고 저물어가는 저녁 경치가 보고 싶다는 듯이 여수 어린 얼굴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유리를 문질렀다.
바로 그때, 그녀의 얼굴에 등불이 켜졌다. 이 거울의 영상은 창밖의 등불을 끌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등불도 영상을 지우지는 못했다. 그렇게 등불은 그녀의 얼굴을 흘러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빛으로 환히 밝혀주는 것은 아니었다. 차갑고 먼 불빛이었다. 작은 눈동자 둘레를 확 하고 밝히면서 바로 처녀의 눈과 불빛이 겹쳐진 순간, 그녀의 눈은 저녁 어스름의 물결에 떠 있는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야광충이었다.
어떠신가요? 물론, 저 위 소설의 한 구절처럼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유리창도 아닌, 거울도 아닌 "이중의 비침" 현상에 대한 선제적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 1학년 시절 입학 봄부터, 어쩌면 현재까지도 잊히지 않는 외사랑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표현 그대로 일방의 사랑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땅히 고백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아! 아니군요. 과함에 편지를 넣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처럼 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5월의 저녁 무렵이었을 겁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과함에 편지를 넣어 두고선 두어 시간을 담배를 비벼 끄다 결국 마음을 돌려 편지를 되찾으려 달려가던 그 밤, 그 어둠 속에서 저는 그 애를 딱 마주쳤습니다. 그 애는 막 편지를 모두 읽은 참이었습니다.
제 마음을 들켰지만, 아쉽게도 당시 그 아이는 어떤 만남을 막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잊기로 했고, 그동안 써왔던 반년 간의 일기를 당시 1학년 여름방학 때 고향집 개울가에서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듯했으나 2학기 수강을 시작하던 첫날, 그 애의 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 저는 이 질긴 외사랑의 줄 위에서 좀처럼 내려서지 못할 것이라는 아찔한 예감을 했습니다.
마음을 감춘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고,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습니다. 좋아하지만,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그러다 저 '이중의 비침 상황'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기하고, 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과 MT를 갔다 오던 날, 우리는 다 함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애는 저의 등 뒤에 서있었는데, 버스 정류장 옆의 공중전화박스에 그 애가 선명히 비치는 것이었습니다. 공중전화박스는 딱 그 애만큼의 공간으로 오직 그녀만 비추고 있었습니다. 소설과는 달리 우리의 배경은 한 낮이었지만, 가로수 짙은 낮 그늘이 유리창을 거울로 투영시킨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투명한 유리에 비친 그 애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을 것입니다. 저도 그 아이를 바라볼 때면 언제나 파르르 떨리던 그 마음이, 시선을 들키지 않는다는 안도감 하나로 차분히 가라앉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답고 슬픈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길 건너편을 바라보는 무심함으로 실은 그 애를, 그동안 애타게 원해왔던 그 오랜 그리움을 응축하여 오직 그 애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 마음 깊은 곳에 저 만의 비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날의 감정과 여운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랬던 것을 이국의 한 소설 속에서 운명처럼 마주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강렬하고 따뜻했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큰 절망과 좌절의 시기에, 저는 한편으로 가장 강렬하고 따뜻한 경험을 서로 교차시켰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오죽하면 저는 그 여운으로 인해 그로부터 몇 해 뒤,
「김수영의 병풍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통해 본 죽음에 대한 고찰」이라는 거창한 졸업 논문까지 써냈습니다. 지금은 찾을 수도 없고, 기억도 희미한 그 논문은 어디에 잠들어 있을까요?
그 이후로도 가끔 땅거미가 지는 그 순간, 저는 버스나 사무실 유리창을 통해 그 이중의 비침 현상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그날의 경험과 저 「설국」의 기차 안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뒤이어 조용히 제 젊은 시절과 그 쓸쓸했던 외사랑이 회상되곤 합니다.
지금에 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랑과 관련된 어떤 글을 쓰게 된다면 이것은 꼭 한 번은 써보고 싶은 주제였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제는 이미 지나온 터널이니까요. 다만 지금도, 또 누군가는 지나고 있을 것이기에
「긴 터널을 지나자 온통 설국이었다.」를 전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