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보는 공무원은 사명감이 있다

공무원이 땅을 알아야하는 이유 - 4편

by 긴오이
땅을 보는 공무원은 사명감이 있다.


써 놓고 보니 비약이 심하긴 하다.^^ 어떻게 수습하지?

(다분히 주관적 의견임을 미리 밝힙니다.)


물론 이 '땅을 보는'의 표현은 투기가 아닌 학구적 안목의 관심을 말한다. 이제부터 설명해 보겠다.

앞서도 밝혔지만 이 학구적이란 표현을 즐겨 쓰는 이유는 땅을 바라보는 관점 중 투기 목적을 정제한 순수성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더 나은 표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이 단어가 제일 정이 간다.

(홀로 외로이 공부하고 있는 한 사람과 그의 책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공공 업무가 생각보다 범위가 방대하다 보니 의외로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 공부를 흔히들 업무연찬이라고 하는데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직장 내에서 공부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자기 업무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는 급여를 받는 직장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직업의식이며, 이러한 공부는 자기 계발 외에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유익함으로 작용한다. 가령 옆사람이 일을 못해서 그 일을 대신 챙겨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제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어느 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원망을 누를 길이 없어질 것이다.

사명감의 사전적 의미는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려는 마음'이다.

따라서 이 사명감은 일을 함에 있어 돈보다 근원적이고 기질적인 성향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희귀함이다.




희귀한 것은 언제나 가치 있다.



당신이 차를 수리하러 정비소에 갔거나, 법률자문이 필요해서 변호사를 찾거나, 하다못해 입주청소를 위해 청소업체를 찾더라도 '이 세상에 정말 믿을 사람없구나' 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자기 일에 사명감이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만약 우연한 기회에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당신은 정말 행운아이며, 그런 점에서 사명감 있는 사람을 늘 아끼고 소중히 하기를 바란다.


공공영역에서의 사명감은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공공영역에서의 '주어진 일'은 그 혜택이나 불이익의 대상이 공공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이 그 업무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땅과 사명감의 주관적 상관관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방행정 영역에서 땅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 특히 땅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업무들은 대부분 관련 법들이 매우 복잡하기 짝이 없다.

앞선 포스팅에서 건축을 예로 많이 들었다. 만약 당신이 건축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법률들이 복잡하기 짝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금세 이해할 것이다. 이 분야에 대해 직접 담당해 본 적은 없지만 건축과 관련된 법률을 생각나는 대로 읊어보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건축법, 건축법 속의 여러 별표와 별표 속 건축물의 종류들, 도시계획조례, 주차장법 및 조례, 상하수도법, 공유재산관리법, 농지법, 산지관리법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법률들이 얽혀있다. 하나의 건축물은 이러한 많은 법률의 적용 아래 관련 인허가를 거쳐 완공되는 것이다. 저 법률을 일일이 검토하고, 진행하기 힘드니까 우리는 건축사사무소라는 대리인을 통해, 시공사를 통해 건축을 진행한다. 건축직 공무원이라고 해서 저 모든 법률을 통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건축에 대한 부분만 검토할 뿐 그 외의 사항은 각각 도시계획부서, 상하수도부서, 교통부서, 정보통신부서 등이 자기 분야에 대해 검토의견을 제출할 뿐이다. 그 종합적인 의견이 모여 건축 여부가 결정된다.




땅에 관심 있는 공무원, 땅의 학구적 안목을 추구하는 공무원은 이 전체 프로세스에 관심 있는 일종의 희귀종 같은 사람들이다.


각 담당분야의 실무자보다 전문성은 약하겠지만, 땅에 관심 있는 공무원은 가령 하나의 건축이 이뤄지기까지 흘러가는 업무 프로세스와 그와 관련된 전체 법률의 연관성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이 건축은 설명을 돕기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 실상 건축이라는 자리에 우리는 택지, 단지, 역세권, 도시개발사업 등을 넣어도 된다. 말그대로 공간채움에 대한 정책과 실제 시행에 대한 관심이다.

자기 업무와 별개로, 순전히 학구적 궁금증에서 출발한 한 분야의 전체 사이클을 온전히 자기 역량으로 키워가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질문한다면,「나는 있을 것이다」 라고 답하고 싶다.

말하자면, 「있을 것이다」가 '사명감'이다.


이 사명감은 정의로움과는 결이 다르다.

'정의감에 불타서' 라기보다는 직업적 소명의식에 따라 자기 일을 잘해보고픈 마음이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부검의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부검을 맡았을 때 온갖 억압과 위협에도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를 기록한 것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자하는 거창한 정의감이나 영웅의식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부검의로서 내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고

실상 땅에 관심 있는」도 마찬가지이다. 조각 조각의 투기로서의 필지가 아닌, 투기로 돈 벌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이노센스(innocence)한 조망으로서의 혹은 구상으로서의 덩어리 땅, 토지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철학을 정립하고, 이 토지에 달려드는 여러 욕망과 욕심들로부터 「통찰된」, 「능숙한」, 그리고 「여유있는」 업무처리를 하고픈 그 사명감이다.



개발사업은 종합계획이자 기획의 꽃이다.


모든 자치단체의 공공업무는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거나 작을지언정 어느 한 종류가 완전히 없거나 하는 것은 별로 없다. 가령 서울시에서는 주정차 단속 업무가 있는데 저기 강원도의 어느 시골 군이라고 그 업무가 없거나 하지는 않다. 서울시에는 노인회가 있는데 작은 단위 군이라고 노인회가 없을 것 같은가?

작더라도 구색은 다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역량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업무 파트는 존재할 수 있다. 가령 내가 근무하고 있는 우리 자치단체는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업무영역이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이를 진행해본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군郡단위 자치단체라면 대부분 이와 비슷한 사정일 것이다.

종합계획의 일종인 군기본계획이나 군관리계획은 짜보았더라도 이를 토지 위에 입체적으로 입히는 실제 개발 시행 사업을 진행해보지 못했으니 군단위 기초자치단체가 자구적 노력만으로 지방발전이나 도시발전을 꾀한다는 것은 분명 한계점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땅에 관심 있는 공무원은 이 거대한 어젠다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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