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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칠이의 잡생각 May 14. 2024

나의 예술관 <2. 시간>


1. 시간 예술

 음악은 문학과 무용, 영화와 같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표현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시간 예술”에 해당한다.


 시간 안에서 소리가 파동하고, 파동의 진동수에 따라 음이 형성되며 그 음들이 리듬에 따라 배열되면 비로소 멜로디가 형성된다. 도자기 공예사가 자연에 존재하는 ‘진흙’을 이용해 그릇을 만들어내듯이 작곡가는 ‘시간’을 재료로 예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만 진흙과 다르게 시간은 ‘무형적’이라는 고유성을 가진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연주하느냐, 또는 재생하느냐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스트리밍 서비스와 네트워크가 발달한 21세기에는 음악의 이러한 특징이 더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는 이제 어떤 곡이든, 어떤 의도로든 음악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다.

2. 클래식 공연

 그렇다면 과연 ‘음악 공연’은 음악 향유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특히 실제 작곡가나 곡의 소유자인 연주자(or 가수)들이 아닌 완전히 다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은 공연에 있어서 더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에 대한 대답의 일부는 다시금 ‘시간’ 안에 존재한다.

현재 살아있는, 또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같은 시간에서 살아간다. 적어도 인간의 ‘인식’에서 만큼은 확실히 그러하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같은 시간’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 한 번도 만난적 없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이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다른 것을 보고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거장과 ‘같은 시간’만큼은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이제는 더이상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사실. 이는 많은 팬들로 하여금 슬픔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 공연은 감상자들로 하여금 연주자의 ‘연주’와 같은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준다.

 연주자들이 시간 위에 음을 배열하는 순간에 같이 존재한다는 것.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소속감과 심미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연주자가 감정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직접적으로 그 느낌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앞서 ‘느낌’ 편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받아들이는 느낌이자 감정은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너무나 다양한 것들이 다양한 비율로 제각기 복합적으로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주자의 감정을, 연주를 같은 시간 안에서 향유한다는 것은 그 복잡한 느낌의 일부를 공유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는 그 어떤 음원이나 영상물보다 더 강렬하게 심미안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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