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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Oct 07. 2017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 말

나는 너를 진심으로 응원해

 말은 너무 쉬워서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무기가 된다.
아기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터뜨리는 눈물도 사실 말의 일종인 것처럼, 말은 누구에게나 쉽게 쓰인다. 엄마, 고생하셨어요, 반가워요, 하는 예쁜 말들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 눈물을 터뜨리지만 우린 안다. 아가들이 세상에 나와 얼마나 반가운지,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를 말하고 싶은 것을 말이다.

 서로 바빠 근근이 연락만 주고받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 회포를 풀던 친구가 있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마음만은 함께했던 친구였던지라 만남의 반가운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엔 늘 부족했었다.
 그 친구가 이번에 결혼을 한다고 했. 몇 년 전, 친구의 예비신랑 분과 밥도 몇 번 먹었었고 여러 번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마치 내가 결혼하는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그녀는 청첩장도 줄 겸 같이 밥을 먹자 했고 장소는 우리가 두 어 번 갔던 식당에 가는 것으로 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그녀는 예쁜 수국처럼 얼굴이 환했다. 마치 엊그제 만났던 것처럼 편한 분위기에 우리는 어느새 과거 처음 만났던 이야기까지 꺼내며 얼굴이 빨개졌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부끄러웠다. 그땐 왜 그랬는지 참, 후회가 막심하다가도 가십거리로는 그만한 게 없었다. 어차피 지난 일이기도 했고 지금은 그때와 다르기에 다시 아무렇지 않게 털어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였기에 당연히 공유할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그때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 참 다행이었다. 그러니 서로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축하해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가 만나서 진짜 다행이다. 지금 생각하니까 참 고마운 순간이네."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다 괜히 울컥해졌다. 분명 내가 말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동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민망한지 우리 짠하자! 하고 외쳤다.
 나는 어젯밤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며 한 자, 한 자 눌러쓴 편지를 건넸다. 자주 얼굴을 보기는 힘들지만 늘 마음만은 함께였기에 진심으로 축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기엔 아무래도 편지가 가장 적당해 보였다. 축의금이야 결혼식 때 지만, 아무래도 돈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무뎌지는 법인데 사람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선명하게 남아있기에.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니 내가 다 설레. 언제나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게."

갑자기 그녀는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결혼 준비로 너무 힘들었다고, 가뜩이나 요즘 마음이 많이 긴장되어 있었다고 했다. 처음 해보는 과정 이어서이기도 했지만 다소 이른 나이의 결혼이어서인지 별로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결혼 소식을 전하면, 축하한다는 말보다 '사고 쳤어?', '남편 몇 살이야?', '신혼집은 누가 해줬어?', '몇 평이야?' 등 본인들이 궁금한 것들을 먼저 물었다고 했다. 남편 연봉, 신혼집, 대출 유무, 임신 유무 등 누군가에게는 조심스러운 것들을 너무 쉽게 뱉어버린다고. 그 말들은 그녀의 결혼이 마치 실패작인 것만 같아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집을 누가 했든, 집이 몇 평이든, 임신을 했든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소중한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과 같은 축하인사를 건네야 할 일들이 있었다.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하고, 물어보는 게 예의였다. 적어도 축하받아야 할 일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사람들의 말은 굳이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너에게 축하해주는 사람들의 말만 들으면 된다고,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데 왜 굳이 가치 없는 말에 에너지를 소비하냐고, 절대 그럴 필요 없다고. 나는 진심으로 너의 앞날을 응원한다고.


 그녀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아무 이유 없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그녀도 나도.

"생각해보니까 진짜 별일 아니다. 내가 괜히 걱정했나 봐. 고마워."


 위로가 되었다고,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고맙다고 했다.

결혼 전 날까지 아니면 어쩜 그 이후에도 계속 남의 말들에 자신을 비교하고 깎아내리며 살 뻔했다고.


 오히려 내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만남이 따뜻했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날 우리가 몇 번이나 서로에게 주고받았던 그 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뭉클한 단어가 가슴에 맴돌았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가슴에 따뜻하고 폭신한 무언가가 얹어져 있었다.


아, 따뜻해. 


 소중한 말들은 금세 흩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발밑이 환하도록 빛을 비춰준다. 따뜻하고, 오묘한 빛. 삶의 순간에 배어 뭉클하게 만드는 빛.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빛.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몇 번을 주고받아도 질리지 않는 빛. 그런 마음이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어줬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뺨이 벌게져있었다.

술 한 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바깥공기가 아직 춥지 않음에도.

그날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취하고 고마움에 취하고 따뜻한 말에 취했나 보다.


고마워.

잘 자. 안녕. 결혼식 때 보자.


 잠들기 전 메신저로 주고받았던 말들까지도 한 자, 한 자 오롯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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