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도 슬퍼할 수 있다
옳고 그름이 헷갈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많이 힘이 들면, 울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어른답게 그 또한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혹은 맥주라도 한 캔 비우고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천천히 걸으며 감정에 익숙해져야 할지.
사람들마다 하는 말이 다 달랐기 때문에
마음을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오히려 더 갈팡질팡했다.
실연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거라며 소개팅 자리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었다.
또 누군가는 여러 번 술자리를 만들어 술을 마셔도 생각이 나지 않는 날이 올 때까지 무뎌져야 한다고도 했다.
같은 부위에 상처를 계속 내다보면 어느새 감각이 둔해져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같은 논리인 것 같았다.
연락을 해보라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즐거워 보이는 사진으로 프로필 설정을 하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미련이 생겨 상대가 먼저 연락을 할 거라고.
'연락을 하고 싶은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럴듯한 논리로 조언했다.
"생각해봐 간단해. 네가 누구랑 헤어졌어. 근데 상대가 프로필도 다 내리고 굉장히 우울해 보여. 그럼 네 속마음은 솔직히 어떨까? 그래, 네가 나 없이 뭘 하겠어. 그니까 있을 때 잘하지 그랬니? 기고만장해지지 않겠어?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별 상대가 엄청 즐거워 보여. 행복해 보여. 그럼 어떨 거 같아? 바로 그때 미련이 생긴단 말이지. 나 없이도 잘 살아? 정말? 나는 아직 못 잊었는데. 너한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그리고 갑자기 상대를 잡고 싶어 지는 거야."
그는 신이 나서 안주를 몇 가지 더 주문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맥주를 단숨에 비우더니 이번에는 소주를 시켰다.
"오랜만에 사랑 얘기를 하니까 취하네."
더 센 술을 시킨 건 그였다.
사랑 얘기를 하니 술이 더 달게 느껴진 걸까.
사랑에 이미 취기가 올랐으니 그 취기에 이어 소주로 받아야 하는 걸까.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우리를 취하게 만들고
또 달달하게 한다는 말인가.
많은 조언들이 있었고, 또 그때마다 말들은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하지만 나는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개팅 자리에 나가는 것은 새로운 상대에 대한 민폐라는 생각도 들었고.
또 익숙해지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무뎌져 가는 것들도 다시 생각해보니 무섭게 느껴졌다.
무뎌진다니, 멀어진다니.
뭔지 모를 정말 소중한 것들이 송두리째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억지로 떼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며 자연스레 모래가 쓸려가듯 그렇게 자연스러운 감정을 지니고 싶었다.
억지로 쓸려가면, 너무 아플 테니까.
더 큰 고통을 견뎌낼 자신은 없었다.
이렇게 힘이 들 땐,
밥을 넘기기는 했는데 그게 무슨 맛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
혹은 노래를 듣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멍해져 상황에 집중을 하지 못할 때.
그럴 때는 어떤 생각, 말들에 의해 행동하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감정에 맡기는 편이 더 나았다.
아프면 아픈 대로, 눈물을 흘렸고.
밥을 먹지 못할 땐 한 두 끼를 따뜻한 차로 대신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다리가 골절되었을 땐 최소 2~3주 통깁스를 하고,
또 골절이 아니라 인대의 문제일 경우엔 반깁스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아플 때도,
좋은 사람이 떠나갔을 때도 그럴듯한 체계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은 실연을 했으니 1~3단계까지 거치면 됩니다.
각 단계별 2~5일이 소요되며, 모든 단계가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어요."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이렇게 말해주는 곳이 있다면
조금 나았을까.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서툰 일들이,
감당하기 벅찬 일들이 여전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
어른이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척척, 하려다가도
갑자기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가.
그리고 눈물을 숨기려 수도꼭지를 틀고 일부러 변기 물을 내려야 할 때가
더러 있다.
슬픈 일은 슬퍼해도 된다고,
어른이 되어도 아플 수 있다고.
말해줬더라면
말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