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13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자유롭고 싶어할 뿐이었던 마음이 영창에 갇히고 난 뒤 국가의 ‘하지마!’란 제도적 명령과 도덕법칙을 받아들이는 내 여정은 정말 그랬다.
군대에 가기전까지 멋대로 살았다. 여자친구가 생기고 술과 담배에 절어 살았다. 매일 니코틴, 카페인, 알코올을 피우고 마시면서 귀에는 항상 이어폰을 꽂고 주말에는 클럽에 놀러갔다. 점점 더 망가져가는지도 모르고 도파민 왕국에서 헤엄쳤다.
3년반을 미친듯이 놀고나자 병역을 피할 수 없는 나이가 찾아왔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고민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의무와 회의감 사이에서 군대로 향했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는 귀찮고, 그냥 적당히 살고 싶어… 놀면서’ 이 생각을 품고 입대했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법은 나를 규율할 준비가 돼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여자친구는 왜 나와 멀어질까? 하는 고민으로 1년째 군생활을 게을리 하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근무지를 교대하는데 교대자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선임이었다. 제 위치로 가지 않고 잡담을 시작했다. 계속 재잘거렸다. 1시간 정도 정위치를 벗어난 채 그에게 고민을 상담하던 밤 당직사관한테 적발됐다. 며칠간 조사받는 동안 감시와 처벌에 관한 공포심으로 절여졌다. 결국 근무지 이탈로 영창 3일 징계가 내려졌다. 갈거면 불복하지 말고 빨리 갔다오자는 생각이 들어 군법무관에게도 징계에 관해 불만이 없다며 얼른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다.
철컹. 영창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자세로 오로지 군 복무에 관한 짧은 책만 읽을 수 있었고 씻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통제됐다. 다른 복무자들과 대화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 살았다. 그러다 보니 이 지경까지 왔구나’ 그렇게 깨우쳤다.
다시 철컹. 영창에서 나오고 햇빛을 받는데 환희가 느껴졌다. 하나님을 만난듯이, 쇼생크에서 나오듯 한여름의 햇빛을 받으며 바르게 살자고 환희 섞인 다짐을 했다. 그 뒤로 군생활에 이제서야 적응하기 시작한 나는 여자친구에게도 차였다. 그것도 후련했다.
남은 1년간 성실히 복무를 마치고 동기들보다 3일 늦게 부대에서 나왔지만 전역까지는 금방이었다. 망가진 나의 재사회화는 나의 “하고싶어!”라는 수많은 욕망들이 국가의 “더 좋은 걸 하고 싶다면 이건 안돼!”라는 법의 엄격함을 배우는 가운데서 이뤄졌다. 빠듯한 근무스케줄도 소화하면서 운동을 틈틈히 해서 성실히 몸도 만들고 나왔다.
물론 전역한 직후 조금 엄격해진 성격과 전통적 의미의 남성 문화에 젖은 군바리티를 빼는데는 오래걸렸지만, 덕분에 지금까지 감옥을 가지 않고 전과도 없이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군대에서 징계받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더 추한 몰골을 하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멋대로 살며 헬조선이니 빈정대고 유흥의 극단을 좇던 시절이 가고 찾아온 봄에 이렇게 외친다. “술이 술을 부르고 일이 일을 부른다는 걸 이젠 압니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