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12
비정규직으로 힘쓰는 일을 한다. 인테리어 필름 업체 창고에서 샘플북과 재고를 관리하고 상하차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F=ma 법칙이 작동하는 육체노동의 직업세계는 노동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입사하기가 쉽다. 게다가 우리나라도 노동조합이 강해져서 처우가 좋아졌다. 그런데 난 이걸로 밥 벌어먹고 공부하고 놀고 다하는데도 조금 위험하고 꽤 더럽다는 점 때문에 힘든 일로 치부했다.
올여름엔 장마가 길었다. 비가오면 번거롭게 수하물에 비닐을 싼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랩을 싸고 퀵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할아버지가 택배물건을 받으러 왔다. 비와 땀이 오래된 물썩은 냄새가 났다. 치아가 불편하신지 어눌하고 큰 말투로 주소를 확인하는데 살짝 불쾌해진 내 감정이 당황스러웠다.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친절하게 안내했다. “여기 가시는 거 맞죠? 운임비는 착불이예요. 감사합니다” 하고 물건을 실었다. 그리고 퀵을 보내는데 비가 더 내리기 시작했다. 물웅덩이로 크게 퍼지는 빗방울의 동심원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실내에서 일하는 난 얼마나 편하냐…”
퇴근시간쯤 마케터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ADHD만 안 걸렸어도 내인생은 더 행복해졌을텐데 ㅜㅜ”. 나는 오늘 봤던 퀵 할아버지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말했다. “역시 행복은 상대적이야” 절대성과 상대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ADHD가 없었다면 ‘나의’ 인생은 더 힘냈을 것이다”와 “비 오는 날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배달을 하는 할아버지’보다’ 나는 더 행복하다” 사이에서 고민했다.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할아버지도 행복할 수 있지. 돈도 벌고, 뭐 다른 작은 즐거움이 있을지도 모르는거고. 그나저나 오토바이도 할아버지도 고생했겠다”
집에 왔다. 하루종일 고생한 엄마에게서 노인냄새가 났다. 갑자기 그녀의 냄새가 시골에 가면 맡을 수 있었던 거름냄새, 풀냄새 같은 시골의향기가 생각났다. 땀을 흘리고 온 내가 거울로 보였다, 내가 따르던 열정적인 영어선생의 커피와 담배 냄새, 곰탕을 끓이고 돈까스 튀기느라 아무것도 못 먹던 아버지의 기름냄새도 스쳐 지나갔다. 가족들 태우고 달리느라 용쓰는 우리집 모닝 냄새도 보인다. 세상을 일구느라 고생한 냄새가 기억 속에 향기로 바뀌었다. 퀵할아버지의 물 썩은 냄새 덕분에.
그게 절대적으로 계산되든 상대적으로 계산되든 간에 우주에서 일어나는 자연법칙의 본질은 에너지의 교환이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원천은 어떤 것의 힘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집을 화사하게 바꿔 줄 배달 할아버지의 향기에서 열을 식히는 힘! 값진 노동의 발걸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