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시온은 어릴 때부터 활발했다. 어린왕자에서 읽었다며 “모든 초딩은 예술가다”라고 외치고 다녔다. 그는 영리하면서도 카멜레온처럼 유연했다.
같은 동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철들 줄 모르는 그를 주먹으로 때린 적도 있지만 우린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의 패착은 입시전쟁 가운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남자학교에 진학한 것이었다. 사랑이 메마른 땅에서 꽃은 피기 어려웠다. 거기서 나는 어떻든 그녀가 없는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틈을 찾았다. 반면 학교에서 나보다 성적이 좋았던 그는 경쟁에서 물러설 줄 몰랐다. 예전보다 날카로워졌고 엄격한 아버지 같은 표정을 하고 다니는 그가 걱정되곤 했다. 어쨌든 우리는 대학에 갔다.
봄이 왔다. 다른 학교에 진학한 시온과 나는 이전처럼 매일 보지는 못했지만 종종 만났다. 하지만 서로 새로운 장소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연락이 뜸해졌다. 남자친구가 아니었음에도 뭔가 질투심이 생겼다. 다른 사람 생긴건지? 하지만 나는 연애하느라 역시 바빠졌다. 그러던 중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가 사라졌다.
그에게 닿을 수 있는 소셜미디어의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전화번호가 없어졌다.
맥스가 집에 찾아왔다.
“야 뭐해. 술 한잔하자”
“어? 뭐야. 그래”
동네 치킨집에 마주 앉았다. 그는 친근하게 물었다.
“요즘 뭐하고 지내냐?”
“그냥저냥 지내지 뭐”
“왜 연락이 안되는 거야?”
“나 있잖아. 인생은 고통이라는 걸 깨달았어”
기억이 나지 않는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맥스를 익절했다.
나는 불같이 그녀를 사랑했다.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른 남자 만나면 어쩔거야?”
“비가역적이지”
“헐~”, “다른 여자 만나면 거시기를 잘라 버릴거야”
면회를 가 다시 만난 시온은 폐인 같은 표정의 우울한 재소자가 되어있었다. 그가 설명한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군 복무 중 여자친구와 싸웠고 결국 전역을 앞두고 차였다. 그런데 이 상황은 그가 알아낸 바 MIT를 졸업한 천재 과학자 지도교수와 대통령, 그리고 유력 재벌이 벌인 농간이었다. 그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핵심 아이디어를 훔치려고 여자를 보내 가스라이팅 하면서 경제적으로 재기불능한 상황으로 밀어 붙였다. 이를 역으로 파악한 시온은 자신을 감시하는 트럭을 때려 부쉈다. 해킹 기술과 자본, 인력이 없어 무방비로 당하고 있는 때에 차량 번호를 거꾸로 읽어 계산해 해당 차량이 그들이 보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를 알리고자 도로에 소화기를 뿌리고 재물을 손괴했다. 범행은 사실이나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출소한 시온은 검은색 100% 블랙홀에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 어때? 많이 좋아졌지?”라고 웃으며 묻다가도 “난 사회에서 낙오한 정신병자야”라고 자책했다. 분명한 건 그 습관도, 행색도, 표정도 날로 달라져갔다.
5년이 지나고, 오늘 시온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야 뭐하냐. 나 요즘 사는게 너무너무 재밌어서 미친 것 같아”
“발목 부러진 건 괜찮냐? 미친 것 같다니 걱정되네”
“의사도 그 소리 하더라. 근데 나 길에서 우연히 걔 다시 만났다. 작별인사 했어.”
“누구?”
“있어.”
내가 만난 한 ENFP 거짓말쟁이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