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폭풍 앞에 서서>

여호수아

by 워쩝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은 정말 짜릿하다. 관객 앞에서 마이크를 붙들고 나를 쏟아내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심각한 노출증, 이건 한번 맛들이게 되면 치료가 어렵다.


이따 만나기로 한 친구는 군기가 셌던 출신 모교에 미국 스트릿 문화를 들여온 힙합 문익점이었다. 타지역에서 온 녀석이었던 주제에 중1부터 고3까지 있는 남학교행사무대에 신입생이 나와서 비트박스 강연을 하지를 않나, 끽해야 옙이나 아이리버가 흔했던 당시 MP3계에 아이팟을 꼽고 다니며 비트박스를 해대질 않나 여러모로 특별한 친구였다. 나는 얘가 정말 맘에 들었고 덕분에 힙합문화를 전수받으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때는 2010년. 학교축제에서 고1이었던 우리는 원어민 선생님과 Black Eyed Peas의 ‘Let’s get it started’ 공연을 펼쳤다. 외국힙합에 빠져있던 우리는 영어로 노래를 불렀는데 관객의 호응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내가 가사를 절어버렸다. 선후배관객들은 “우우”하고 우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렸다. 겁없이 무대로 돌진하던 처음과 달리 얼굴에 벌게진 지금도 가끔 기억나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어떻게 내려왔는지 전혀 모른다.


이에 더해 이 스토리가 꿈에 나오는 이유는 다음 한 선배의 무대였다. 선곡은 드렁큰타이거의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새빨간 색의 피는 누구나 흘리니까, 죽을 때는 빌린 내 몸 흙이 될 테니까.”하고 “Buck two in the air (Buck! Buck!)” 하는 순간 천명이 넘는 전체 관객이 격하게 호응하는 순간 알게 된 팩트는 말 그대로 개발렸다는 것.


어제 출근 첫주가 끝나고 이태원 이슬람 성원(모스크)을 다녀온 뒤 할랄 푸드를 먹으면서 16년 전 축제에서 본토흑인힙합이 로컬코리안힙합에 개발린 2010년을 돌이켜보니 때는 한국에서 바야흐로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논란이 휩쓸고 간 시기였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중국에서 고기는 돼지고기다. “천일야화는 아랍설화인데 알라딘은 중국소년이다.” “북아프리카부터 중국까지 닿는 사막지대엔 낙타가 길을 만든다.” 결론은 “빈지노의 처녀작이자 한국힙합 올타임 레전드 앨범 24:26의 표지는 낙타그림이다.”(?)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내가 만난 어떤 사람들은 극과 극은 만난다는 말을 참 좋아했는데 북한은 종교를 금지하며 국가 무신론을 택했고, 이란은 종교를 가장 앞에 두는 신정을 택해 상극이라고 보이지만 양국은 극단적인 반서방국가로 서로 제재를 회피할 수 있게 돕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됐는데 남북한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졌다.


오늘은 교회에서 모세오경을 마치고 여호수아에 들어갔다. 독립운동가들이 일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모두 함께 일어났던 삼일절이 지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새날새학기가 시작되는데 무운을 빌기 위해 정말 마지막으로 한강에서 쏘주 한잔만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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