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관기
“죽여! 죽이라고”
진실로 기억나는 장면은 나를 향해 이렇게 소리치는 주정부리는 형. 바로 이빠이 취한 내가 잘생긴 수석 형의 얼굴을 주먹으로 두들겨 패는 몸동작. 형과는 이 날 이후 멀어졌다. 최악의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형과 나는 같은 날 졸업했다. 사과했다.
어느순간부터 다이내믹코리아는 간데없고 우리나라도 절주의 시대가 왔다. 그러나 그 배경에 대해서 나는 씁씁할 해석을 내놓는다. 플라톤주의자가 할법한 주장은 ‘청년의 쪽수문제’다. 우리나라는 작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가 시작됐다. 굳이 여러 숫자를 갖다대지 않더라도 역피라미드형 한국인 인구구조를 본 사람은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갖는다. 재외교포들 역시 계속해서 한국문화를 공유하고 있고 저출생 트렌드가 심각하면 심각했지 덜하지 않게 tribe가 유지되고 있다. 결국 청춘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마시는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어제 낮에 강남구청부터 걸어가면서 골목을 한바퀴 도니 예전에 유튜브에서 봤던 결혼정보회사 건물이 있었다. 알짜입지에 고급스러운 건물이 우뚝 서있어서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예약제인 것 같았다. 앨빈토플러가 얘기했던 정보화 혁명이 결혼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던가. 지금은 여의도 더현대 카페에 앉아있다. 비싸진 않지만 좁고 불편한 엔제리너스에서 미끼에 물려 잡혀온 고기처럼 동태눈깔을 하고 맛있는 카페인 오염수를 마시며 뻐끔뻐끔 앉아있다. 명품관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다. 같이 온 귀여운 애는 조각케이크를 맛있게 먹는다. 한국은 빅테크(글로벌 기술기업)들의 무덤, 갈라파고스(외딴섬)라는 외신의 오래된 평가다.
이어지는 저녁 점점 더 가난해지는 나와 친구들은 어디로 가야하는 줄을 모르고 오뎅바에서 청첩장모임 뒷풀이를 한다. 외국여자들을 헌팅하는 ‘홍대가이’ 현상도 볼만하다. 하지만 주말 밤거리에 불이 꺼지지 않던 모텔 수입이 줄어드는 대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후문이다. 영등포 할렘가에서 출구로 향하는 길 노래방 안가겠냐는 고전적 쎄일즈가 들어온다. 이미 아는 맛이다. 택시를 잡아 탄다.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 전화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인류사는 전쟁사였다. 언제나 리소스는 무한하지 않고 장정들은 배고팠기 때문에, 약속 없던 거리에서 너를 향해 걸어왔던 원인으로 때로 적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휘두르는 손이 우리를 잡아먹지 않기를, 항상 손은 파괴보다 창조를 향해 움직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