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초상화>

신명기

by 워쩝

“식당에 딸린 단칸방에 살면서도 근친상간 한번 없는 안가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어 닥치기 전에 제각기 자리로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복학했을 무렵 기억해둔 김중식 시인의 시 한귀절이다.


홍대거리에서 만난 수지(가명)는 같이 밥을 먹으면서 듣기로 헬조선 담론 속에서 “청년들이 눈이 높아 취업을 안한다”라는 말에 왜인지 긁힌 편의점 알바생이었고 가출(21살이었으니 출가였다고 하고 싶지만)한 알코홀릭 초기의 클럽 죽순이였다. 어찌저찌 번호를 알아내서(당시에는 인스타가 없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걔가 다니는 남영동 근처의 여대로 놀러가려고 했다. 근데 밥은 먹었으니 자기 알바하는 곳에 잠깐 들러서 얼굴만 보고가란다. 감이 없던 나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걔가 보고 싶어서 찾아갔다.


만리동 넘어가는 고갯길 초입에 오래된 목욕탕과 여관 맞은편에 있는 화려한 불빛의 GS25에 수지가 있었다. 당시 나는 회계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생긴 종이영수증을 챙기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는데 먹을 거 몇 개를 고른뒤에 수지한테 나눠주며 말했다. “영수증 주세요~” 수지는 한박자 느리게 영수증을 뽑아줬다.


싫다고 말한 건 아니어도 좋다는 것도 아닌데 너무 자주 연락하면 차단당할까봐 가끔 가서 영수증을 뽑았다. 그냥 내입장에서 진짜 최대한 가끔. 저녁알바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편의점에는 남자들이 많았다. 경쟁의식이랄지 우열감이랄지 들곤 했는데 나는 원효로에 친구집에 얹혀살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들르던 거라 편의점을 나서서 다시 집으로 오는 속도를 내면 퀴퀴한 기분이 날아가곤 했다.


그렇게 저렇게 시간이 흘렀고 결국 삼수한 해에도 시험에 떨어졌다. 애초에 3년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시작한 게임이어서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격증 시험 준비를 마치고 본가로 돌아가 취업하기로 결정했다. 영수증을 다 버렸다. 그다지 떳떳한 기분은 아닌채로 살던 동네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편의점에는 수지대신 몇번 인사를 나눈 주인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담배를 사가는 나더러 말했다. “안팔아!” 내가 답하기로 “손님이 오면 파는 거지 그런게 어딨어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런게 있어!”란다. 기분이 팍 상했지만 어두운 얼굴로 “자꾸 시험에 떨어져요”라고 답하고 돌아왔다.


며칠 뒤 수지와 마지막으로 곰탕집에서 돈까스를 먹는데 걔가 말해주기를 “이제 편의점에 나 없을거야~”란다.


동네를 뜨기전 자전거를 타고 돌다가 청파동 GS25에 들렀는데 수지가 있었다. 헤어질때 전공을 물으니 걔가 얼버무리며 답했다. “컴공!”


영수증은 뽑지 않고 편의점 문밖을 나섰다. 수지와는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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